실험예술 선구자의 '온고'와 '지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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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17일, 청년 작가 강국진은 정강자, 정찬승과 한강변 모래밭에 나란히 몸을 파묻었다.
관객이 퍼붓는 물세례를 받은 그들은 구덩이에서 나와 몸에 비닐을 걸치고 그 위에 사이비 작가들을 공격하는 문구를 쓴 뒤 비닐을 벗어 불태웠다.
강국진은 70년대 중반 이후 유신의 폭압 속에서 세태 비판적인 행위예술과 개념미술에 집중할 수 없게 되자 판화와 추상회화 작업에 주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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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17일, 청년 작가 강국진은 정강자, 정찬승과 한강변 모래밭에 나란히 몸을 파묻었다. 관객이 퍼붓는 물세례를 받은 그들은 구덩이에서 나와 몸에 비닐을 걸치고 그 위에 사이비 작가들을 공격하는 문구를 쓴 뒤 비닐을 벗어 불태웠다. 기성 미술계의 위선을 질타한 퍼포먼스는 훗날 미술사에 <한강변의 타살>이란 작품으로 기록됐다. 현대미술에 대한 기본 인식조차 없던 시절, 강국진은 미친 짓이란 비판을 견디며 전위 퍼포먼스와 산업재료를 활용한 테크노아트, 설치미술 등을 벌이는 선구적 발자취를 남겼다.
서울 중구 회현동 금산갤러리에 차려진 회고전 ‘오마주! 강국진―‘온고’와 ‘지신’ 사이’는 생전 조명받지 못했던 실험예술 선구자 강국진(1939~1992)의 자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는 70년대 이후 전위미술을 접고 판화와 함께 주력한 회화 작업을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 재조명된 그의 창작 역정에 대한 미술사적 논의를 바탕으로 꾸려졌지만, 그동안 거의 보이지 않았던 추상·반추상 회화를 집약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강국진은 70년대 중반 이후 유신의 폭압 속에서 세태 비판적인 행위예술과 개념미술에 집중할 수 없게 되자 판화와 추상회화 작업에 주력하게 된다. 당대 한국 미술판을 뒤덮었던 단색조 회화 모노크롬과 달리 다기한 선과 색조로 개인의 감성과 감각, 전통성과 현대 조형성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유화와 수채 등으로 표현했다.
출품작을 살펴보면 화면 위로 죽죽 그은 특유의 섬세한 선과 리듬감 있게 뒤바뀌는 색조가 도드라진다. 60년대 말~70년대 초 꽃피었던 실험 정신이 추상적인 선, 색조, 색면으로 계승돼 울렁거리거나 내리꽂히는 듯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강국진의 그림은 낭만적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당시의 심정이나 정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추상화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의 음악적 회화처럼 정서적 울림을 준다.
70년대 중후반부터 80년대 초를 대표하는 <가락> 연작은 산과 노을, 빛덩어리 같은 배후의 모호한 형상을 두고 뿜어내는 빛과 색채, 선묘의 감각적인 어울림이 흥취를 배가시킨다. 마지막 회화 유작인 1991년 작 <역사의 빛>은 파랑, 노랑, 하양 등 원색조의 색이 이룬 짧은 띠 같은 이미지가 화면을 부유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역동적인 구성을 보인다. 작품을 완성한 직후 작고하면서 화풍의 변화가 영글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안긴다. 유화, 수채화, 파스텔화 등의 회화를 다룬 1부가 18일까지, 판화를 소개하는 2부가 3월2~25일 이어진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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