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 아이들과의 1년..그저 소년일 뿐이었다

허윤희 2021. 2.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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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교사가 소년원 아이들과 보낸 1년 기록
소년들과 책 읽고 이야기하며 편견 허물고 교감 나눠
한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사계절·1만3000원

‘철컹철컹 철컹철컹’. 철창이 열린다. 냉기가 감돈다. ‘○○○○ 학교’라는 이름을 단 이곳은 소년원이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교정·보호하는 법무부 소속 특수교육기관이다. 2019년 3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서현숙씨는 이곳에 들어갔다. 의무교육 과정을 마치지 못한 소년들에게 국어 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전날 밤 “덩치 큰 아이들이 나를 마뜩잖은 표정으로 꼬나보”고 “아이들의 입에서 욕이 연달아 튀어나오는 꿈”을 꾸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컸다. 15년을 보낸 학교 교실과 다른 곳에서 수업을 하는 첫날이었다.

<소년을 읽다>는 서현숙씨가 소년원에서 1년간 국어 수업을 하며 겪은 일들을 담은 에세이다. 서씨는 교육부의 ‘의무교육단계 미취학·학업중단학생 학습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파견 교사로 소년원에 갔다. 소년원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나눈 이야기, 자신이 가진 편견과 생각의 변화 등을 세밀히 기록했다.

이 책은 소년원 아이들을 향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씨에게 “소년원에 있는 아이는 ‘얼굴을 모르는 범죄자’”였다. ‘소년원-불량학생-폭력-험상궂은 인상-안 좋은 가정환경’으로 그들을 범주화했다. 이 틀에서 벗어난 아이를 만나면 서씨는 의문이 들었다. 착해 보이는 아이에게는 “이렇게 인상 좋은 애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책에 빠져드는 아이를 보면 “이렇게 책을 잘 읽는 애가 어떻게 나쁜 짓을 했을까?”라고 궁금해 했다.

서씨는 그들이 “타인에게 고통을 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지닌 존재”라고 인식한다. “쓰레기도 인간말종도 아닌 그저 소년일 뿐”이었다. 만나면 수줍게 웃고 시를 외울 때면 눈빛이 순해지는 소년들. 자신이 읽은 책의 작가를 만나기 전에는 설레고, 작가를 만나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느라 수다쟁이가 되는 학생이었다.

편견을 벗고 바라보니 아이들의 삶이 보였다. “자라온 가정환경이 안온하지 않은 아이, 소년원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가도 마땅히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 극심한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이”들. 그들이 간직한 “마음의 맨살”도 볼 수 있었다. 수치스러움, 미안함, 후회의 감정을 지닌 소년들은 그곳에 갇힌 시간을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강준이(가명)는 그런 마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제가 이전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게 제일 겁나요. 여기 들어오기 전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될까 봐….”

책은 서씨와 소년들을 잇는 중요한 매개물이다. 서씨는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낭독하게 한다. 아이들은 묵독하는 대신 소리내어 읽었다. 특히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는 조금 산만하다가 이야기에 푹 빠지는 순간이 모두에게 찾아온다. “소설에서 재미있거나 어이없거나 슬픈 순간의 감정, 그 짧은 순간의 감정은 우리가 함께하는 ‘즐거움’이었다. 동시에 웃음이 터지거나 슬픔을 느낄 때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책을 함께 읽을 때 그들은 ‘몰입의 공동체’가 됐다.

서씨는 소년원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환대’한다.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준비하고 웃는 얼굴로 맞는다. 서씨는 사람이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고 정성껏 대하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영혼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 아이들 역시 그 마음을 알았다. 고마워했다. “여기 국어 시간에 오면 환대받아요. 선생님한테.” “저희를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특별한 환대의 자리도 열었다. 서씨는 소년원으로 <회색 인간>의 김동식 작가,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의 박찬일 요리사, <까대기>의 이종철 만화가 등을 초대한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작가 편지 낭독, 인상 깊은 구절 낭독, 작가 소개 등 각자의 역할을 주었다. 아이들은 독자가 되고 행사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한다. “환대로 사람을 맞이하는 경험, 자신이 주체로 활동하는 경험은, 나도 타인도 소외되지 않는 연습이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연습이다.”

서씨는 소년원의 아이들을 미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들이 죄를 지어 누군가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아이들의 소년원 밖 삶도 살핀다. 소년원은 전국에 10곳이 있고 1000여 명이 수용돼 있다. 소년원생 중 40%가 재입소한다. 소년원 아이들은 “소년원에서 나가 비슷한 생활을 반복하다가 다시 소년원 또는 교도소에 가게 되는 것을 가능한 일, 주위에서 흔한 일”로 여긴다. 소년원에 있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 노력하고, 다르게 살고자 하는 꿈을 가져도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모든 것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달라진 점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더 안 좋아졌다는 것뿐. 소년원 동수(가명)의 말은 한없이 슬프게 들린다. “방 밖에 나가도 역시 소년원이잖아요. 감옥방을 나가야 또 감옥인데요 뭐.”

서씨는 아이들이 훗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의 어른들이 그들에게 사람과 신뢰 관계를 맺고 존중받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그런 삶을 욕망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그들은 곧 우리의 이웃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엇보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 우리 곁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죗값을 치르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소년을 읽다>를 펴낸 서현숙 교사. 서현숙 제공
“학교 밖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만나게 해줘야 해요”
‘소년을 읽다’ 펴낸 서현숙 교사 인터뷰

“사람들이 뭐래요?”
<소년을 읽다>를 펴낸 교사 서현숙씨에게, ‘수업 일기’를 알게 된 ‘소년들’이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었다. 서씨는 2019년 3월부터 한 해 동안 소년원에서 국어 수업을 진행했다. 학업 중단 소년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서씨는 국어 수업을 진행한 기록을 페이스북 ‘수업 일기’에 올렸는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 반응을 가장 먼저 궁금해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소년원에 있는 자신들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애들도 알고 있거든요. 안 좋은 댓글이 많을 거라고 지레 생각하고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2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서씨는 ‘수업 일기’가 <소년을 읽다>의 바탕이 됐다고 했다.
소년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댓글은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 아이들이 읽을 책을 후원하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고 ‘좋아요’를 눌러 응원해준 사람들도 많았다. “소년원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사람들은 ‘얘네가 나쁜 짓을 했다지만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이구나’라고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니 어른으로서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거겠죠.”
그가 1년간 소년원 아이들만 관찰한 것은 아니었다. 기록에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도 녹아들어 있었음을 알게 됐다. “책을 펴내면서 제가 쓴 글을 찬찬히 다시 읽어봤어요. 처음에는 독서 교육 과정을 열심히 적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책 너머의 사람 이야기를 더 많이 썼더라고요. 책보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에게로 초점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 것 같아요. 책을 통해 사람이 뒤늦게 보인 거니까, 책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다리처럼 이어주는 매개체인 셈이죠.”
그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어른의 역할을 강조했다. “소년원 아이들도 그렇고, 다들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 좋아하는 이야기를 못 만났기 때문이고요. 그런 아이들이 책에 담긴 이야기, 자기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게 돕는 게,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해야 할 일 같습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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