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짜뉴스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수학

김진철 2021. 2.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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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감염학자가 풀어낸 전염병·가짜뉴스 등 전염 법칙
만능열쇠 같지만 데이터 한계 인식해야 진실 접근 가능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입구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

애덤 쿠차르스키 지음, 고호관 옮김/세종서적·1만9000원

코로나19와 가짜뉴스, 바이럴 마케팅, 컴퓨터 바이러스와 트윗.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이것들의 공통점은 ‘퍼진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와 폭력사건도 같은 특징을 지닌다. ‘전염’의 문제다. 감염병 같은 자연현상뿐 아니라 가짜뉴스와 금융위기 같은 사회현상에 모두 적용되는 전염에도 원리가 있다.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원리다.

코로나19 덕에 익숙해진 R값. 감염재생산수라고 불리는 R은 감염자 한 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 나타내는 숫자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와 대한수학회가 함께 운영하는 ‘코로나19 수리모델링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15일 ‘코로나19 확산 예측 보고서’에서 전국의 코로나19 감염재생산수를 0.63~0.88이라고 밝혔다. 1명이 1명 이하를 감염시키므로 R이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종국에는 코로나19 확산이 멈추게 되겠지만, R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R은 익숙해졌지만 원리는 쉽지 않다. ‘수학’이란 두 글자에 경기를 일으키는 ‘수포자’들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다. 영국 런던대 위생·열대의학 대학원 교수인 애덤 쿠차르스키가 쓴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는 전염에 수학을 적용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든, 가짜뉴스·폭력사건·금융위기 등 사회적 질병이든, 더 나아가 혁신적 아이디어처럼 전염이 긍정적인 경우에도 수학의 원리를 따라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수학자이자 감염학자인 쿠차르스키는 ‘최대한 쉽게’ 설명해준다.

말라리아 이야기부터다. 가장 처음으로 전염의 원리가 발견된 사례다. 나쁜 또는 미친(Mal) 공기(aria)라는 뜻의 말라리아는 18세기에 명명됐는데, 늪지에서 발생한 나쁜 공기가 원인이라고 여겨져서다. 모기가 매개한 기생충이 감염되어 발병하는 것을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인류는 알지 못했다. 이 문제를 파고들어 밝혀낸 이는 영국의 열대병 학자 로널드 로스(1857~1932)다.

로스의 ‘모기 정리’는 결정적 통찰이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면, ‘모든 모기를 없애지 않고도 말라리아는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 1910년 로스가 펴낸 <말라리아 예방>에 담겼다. “모기 밀도에는 임계치가 있고 모기 숫자가 그 아래로 떨어지면 말라리아는 저절로 사라”진다. 많은 이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기에, 로스는 수학에 눈을 돌린다. 부친의 강요로 의대를 나온 로스는 훗날 수학의 필요성을 절감한 뒤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는 여성을 향한 유부남의 불행한 열정이었다.” ‘모기 정리’라는 수학적 명명은 이 열정을 잘 보여주거니와 1902년 제2회 노벨의학상 수상으로 이어졌으니 불행하기만 했다 할 수는 없겠다.

‘모기 정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말라리아 등 전염병에서) 회복되는 숫자가 새로 감염되는 숫자보다 빨리 늘어나면 질병은 줄어들다 궁극적으로 사라질 것이다”라는 설명을 곱씹어 보자. 로스는 이렇게 계산했다. 주민 1000명 중 1명이 감염된 마을에 모기가 4만8000마리이며, 모기 4마리 중 1마리만 사람을 물고, 말라리아 기생충이 몸속에서 번식할 만큼 오래 사는 모기는 3마리 중 1마리라는 가정에 바탕했다. 따라서 사람을 무는 모기는 1만2000마리이고, 이 중 감염자 1명을 물어 숙주가 되는 모기는 12마리, 이 중 기생충 번식 모기는 4마리, 이 중 사람을 물어 전염시키는 모기는 1마리다. 여기에 감염 뒤 회복된 사람의 비율 20%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학질모기가 매우 많아서 새로 감염되는 숫자가 회복되는 숫자를 채우지 않는다면 말라리아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후 1950년대 런던대 위생·열대의학 대학원 로스연구소에서 말라리아를 연구한 조지 맥도널드는 “감염자 한 사람이 인구 집단에 나타나면 (…) 얼마나 많은 감염이 뒤이어 나타날” 것인가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했고, 그로부터 20년 뒤에 수학자 클라우스 디츠가 R이라는 매우 유용한 도구의 윤곽을 만들어낸다. R은 에이즈에서 에볼라까지 모든 감염병 문제에 대응하는 중요한 무기가 됐다.

전염은 바이러스나 기생충만의 문제가 아니다. 애덤 쿠차르스키가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를 쓰게 된 것은 트위터 때문이었다. 트위터에 사진 한장을 잘못 올렸다가 단시간에 수백 건이 리트윗되는 일을 겪고서 질병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현상에서 벌어지는 전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염병과 같으면서 다른 금융위기의 확산 양상과 원리, 감염병 팬데믹과 주식시장 거품의 유사성, 미국 시카고시에서 연쇄 폭력 사건을 막는 데 ‘폭력의 잠복기’를 착안해 활용된 천연두 퇴치 메커니즘, 전파 기회보다는 전파 확률이 높기에 진짜 뉴스보다 더 널리 더 빨리 퍼지는 ‘가짜뉴스’ 현상 등을 쿠차르스키는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정도면 수학은 만능열쇠인 것만 같다. 과학분야의 다른 영역과 달리 수학은 자연에서 관측할 수 없는 개념까지 추상화하는 특징을 바탕으로 여타 다른 학문을 정교화하는 데 응용된다. 수학 없는 디지털 기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구나 숫자는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이라는 매력까지 지녔다. 그러나 숫자는 세상을 보는 도구일 뿐이다. 수학으로만 세상을 보면 진실에 가닿을 수 없다. 쿠차르스키는 숫자라는 사실에 갇혀 진실을 놓치게 될 위험 역시 보여주며 감염학자 캐롤린 버키가 인용한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말을 재인용한다. “진실은 수많은 오류를 한데 모아야만 얻을 수 있다.” 수학의 근저를 이루는 데이터의 한계를 인정할 때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매일 쏟아지는 숫자들만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인간적 열정과 노력, 연대와 협동을 보탬으로써 역경을 넘어서리라는 낙관을 발견하게 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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