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치욕의 날'..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 해명' 파문

안아람 2021. 2. 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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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탄핵 언급' 주장 반박.. 녹취·음성 공개
법원 내부 충격 휩싸여.. 김명수 리더십 치명타
金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 의존.. 송구" 시인
국회, 헌정 사상 최초 판사 탄핵소추안 가결돼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오후 퇴근길에 지난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는 과정에 대한 '거짓 해명'과 관련해 취재진에게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부가 충격에 휩싸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 해명’을 한 사실이 4일 만천하에 공개된 탓이다. 지난해 5월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제출 당시 ‘탄핵’을 언급하며 반려했다는 의혹이 3일 제기되자 김 대법원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으나, 이는 하루 만에 뒤집혔다. 경위야 어찌됐든, 의도적이지 않았다 해도, 사법부 최고 수장의 ‘거짓말’이라는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일선 법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79ㆍ반대 102ㆍ기권 3ㆍ무효 4’로 표결 결과가 나와 결국 가결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 사태가 현실화한 데 이어,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파문까지 겹치면서 사법부 전체가 극심한 내홍을 겪게 됐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대법원장이 거취 표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다.

임 부장판사는 4일 “사법부의 미래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녹취 파일을 공개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된다”면서 지난해 5월 22일 김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녹음해 둔 음성파일과 녹취록 일부를 공개했다. 당시 김 대법원장의 ‘탄핵’ 언급 발언 의혹이 진실공방으로 번지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녹음파일 및 녹취록을 보면,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도중 ‘탄핵’이라는 단어를 최소 5번 사용했다. 그는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된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지금 상황을 잘 보고,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어 “임 부장 경우는 임기도 사실 얼마 안 남았고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며 “탄핵이라는 제도,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하지 않느냐.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전날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했던 해명과는 정면 배치되는 발언이 실제로 있었던 셈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관 탄핵’ 관련 주요 발언. 그래픽=송정근 기자

김 대법원장은 즉각 ‘공개 사과’를 했다. 그는 대법원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녹음자료와 같은 내용을 말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것”이라며 “기존에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도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임 부장판사 사표 수리 여부와 관련해 사법부 수장이 ‘정치적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문제인데, 이와 관련한 ‘거짓 해명’으로 회복 불가능한 흠집을 스스로 남겼다는 얘기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사법농단 사태 때에도 법관들이 가장 분노했던 건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이 거짓말을 내놓으며 대응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정치권 눈치 보는 식의 말을 한 건 사법부 수장으로서 할 말이 아닌 것 같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김 대법원장이 전날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도 않고 해명한 데 대해선 ‘어이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증인 진술의 진위 판단을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판사가, 대법원을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고선 뒤늦게 ‘기억이 잘못 됐다’는 취지로 다시 해명을 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일선 법원에선 “그만큼 이 사안의 중대성을 모르는 것” “이번 일로 ‘사람이 가볍고 무게감이 없다’는 평가가 맞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등의 촌평마저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퇴근길에서도 “임성근 부장판사와 실망을 드린 모든 분들께 깊은 사과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재차 사과했다. 그러면서 “오늘 국회에서 법관에 대한 탄핵 표결 절차가 이뤄졌다”면서 “안타까운 결과라고 생각하고 이 또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고 덧붙였다. 2021년 2월 4일을 두고, 또 하나의 ‘사법부 치욕의 날’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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