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설탕물은 “선거 전” 쓴 약은 “선거 후”

김홍수 논설위원 2021. 2. 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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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면 4월 8일(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다음 날)부터 공매도 풀어라”. 금융위가 5월 3일부터 중·대형주 공매도를 허용한다고 발표하자 ‘동학 개미’들이 반발하고 있다. 개미들이 반대하는 공매도 재개 시점을 지자체장 선거가 있는 4월을 딱 피한 것이 정치적 꼼수라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엔 “허접한 선거용 대책”이라며 ‘금융위원장을 탄핵하자’는 글이 올라왔다.

▶공매도 자체는 증시 과열을 막고 적정 주가를 찾아주는 순기능이 있다. 미국 ‘게임스톱' 사례에서 보듯 개미들이 선의로 포장한 선동에 휩쓸려 부화뇌동하다가 머니게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공매도 제도는 기관·외국인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동학 개미들의 비판 역시 정당하다.

▶금융 당국은 ‘5월 초 재개’에 대해 “전산 개발과 테스트 기간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한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매도를 당장 재개했다가 동학 개미들의 반발이 표심으로 나타날까 봐 겁이 난 것이다. 공매도만이 아니다. 주식 양도 차익 과세를 강화하겠다며, 과세 공제 금액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리고 중과세 대상인 대주주 요건을 3억원으로 낮추는 정책은 시행 시기를 2023년으로 늦췄다. 2022년 대선 이후로 미룬 것이다.

▶세상에 세금 인상을 좋아할 유권자는 없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2010년 ‘더 일하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가 재선에 실패했다. 영악한 정치인은 국민이 싫어할 정책은 선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으로 타이밍을 잡는다. 일본 아베 정부는 소비세 인상 시점을 총선 승리 3~6개월 뒤로 잡아 큰 저항 없이 마무리했다. 선거 공학 아이큐(IQ)가 있다면 문 정권은 세계 최상위권일 것이다.

▶문 정부는 ‘설탕물은 선거 전, 쓴 약은 선거 후’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4·15 총선 때 450만 가구에 4개월치 아동수당 1조원을 선거일 불과 이틀 전으로 앞당겨 지급했다. 총선 1주일 전엔 코로나 사태로 중단된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노인 52만명에게 3월치 임금 27만원을 ‘선지급’ 형태로 나눠 주었다. 선거 전 코로나 재난지원금 100% 지급을 결정하고, 대통령이 “미리 신청을 받으라”고 했다. 재미를 본 여당은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같은 카드를 또 써먹고 있다. 여당 대표가 4차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공언하고, 부산 가덕도 공항 카드를 띄운다. 공매도 허용 시점 결정에도 선거 공학 IQ가 작동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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