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김진욱 공수처장의 ‘인턴’ 시절

곽아람 문화부 차장 2021. 2. 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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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쓴
샌델 교수 기자회견서
손 번쩍 들고 질문하던
’신문사 인턴’ 김진욱
그의 正義가 궁금하다
스페인 화가 엔리케 시모네 롬바르도의 1892년작 유화 '예루살렘을 굽어보며 눈물을 흘리심'./프라도 미술관 소장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15년 영화 ‘인턴’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30대 여성 CEO 줄스(앤 헤서웨이)와 70대 인턴 벤(로버트 드 니로)의 이야기를 그렸다. 줄스는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채용한 벤이 묘하게 불편하다. 벤은 기업 부사장까지 역임한 베테랑. 업무며 인간관계며 자신보다 훨씬 능수능란한 인턴 때문에 심경 복잡한 줄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어떤 ‘인턴’을 떠올렸다.

그를 만난 건 2010년 8월이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인 40대 중반 남성으로 법조인들을 위한 전문 분야 실무수습 프로그램에 참여해 신문사 단기 연수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관심 분야는 “책”. 그리하여 그는 당시 문화부 출판팀 막내 기자였던 내게 배정되었다.

열세 살 위의 법조인 ‘인턴’은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든 주니어 기자에게 버거운 상대였다. 대학생 인턴처럼 스스럼없이 대할 수가 없었다.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 가면 서로가 편할 텐데 심지어 성실했다. 매일 정시에 출근해 진지한 얼굴로 “오늘은 뭘 하나요?” 물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학과 선배였는데 딱히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학연 따위엔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방한 언론 간담회가 있던 날, 좀처럼 동요 없던 그의 눈에 열망이 가득 담겼다. “샌델 무척 좋아해요. 하버드에서 연수할 때 명성을 익히 들었죠.” 그와 나란히 앉아 간담회에 참석했다. 질의 응답 시간이 왔다. ‘스타 교수’를 향한 취재 경쟁 속에서 질문할 틈을 노리고 있는데 옆자리의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 내가 해야 하는데….’ 언론사당 한 명에게 돌아올까 말까 한 귀한 기회를 ‘인턴’에게 빼앗긴 담당 기자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이크를 넘겨받은 그는 말했다. “조선일보의 김진욱입니다.”

그가 초대 공수처장으로 지명된 날, 축하 인사를 하고 싶어 휴대전화를 뒤져 연락처를 찾았다. 미술사 전공자답게 카카오톡 프로필에 미술관에서 직접 찍은 것으로 보이는 그림 사진이 걸려 있었다. 스페인 화가 엔리케 시모네 롬바르도(1866~1927)의 1892년작 ‘예루살렘을 굽어보며 눈물을 흘리심’. 프라도 미술관 소장품인 이 그림은 가로 5m, 세로 3m 크기의 유화로, 예루살렘 입성 전 제자들을 이끌고 감람산 기슭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예수를 담았다. 신약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감한 예수는 울며 말한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의’에 대해서는 오래 고민했으리라 믿는다. 10여 년 전 간담회가 끝난 후, 김 처장은 ‘정의란 무엇인가’ 원서를 꺼내 샌델에게 사인을 청했다. 유창한 영어로 공동선(共同善)과 공정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앞으로 구현할 ‘정의’는 어떤 모습일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하다.

영화 ‘인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벤은 “좌우명이 있냐” 묻는 줄스에게 이렇게 답한다. “옳은 일은 절대 잘못이 아니다(You’re never wrong to do the right thing).”

영화 '인턴'의 한 장면/구글이미지
영화 '인턴'의 한 장면/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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