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4] 용틀임하는 향나무 고목의 사연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2021. 2.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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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노백도(老栢圖)'
정선 ‘노백도’, 18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담채, 131.6x55.6cm, 리움미술관 소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아름드리 고목나무는 대부분 곧은 줄기를 갖는다. 그러나 향나무로 추정되는 ‘노백도(老栢圖)’ 속 나무는 줄기가 심하게 휘고 굽어 있어서 승천하려는 용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이다. 줄기와 나뭇가지의 뻗음이 초서체로 쓴 목숨 ‘수(壽)’ 자와 비슷하여 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뒷날 덧붙여진 찬문(讚文)의 내용에도 장수를 축원하는 글이 있어서 향나무 고목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심하게 구부러져도 건강한 잎을 가지고 자람이 왕성한 것은 불굴의 의지를 나타낸다는 해석도 한다.

노백도의 향나무가 이렇게 심하게 휘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자라는 터의 땅이 너무 척박하거나 타고난 유전적 성질에 영향을 받는다. 또 인위적인 피해를 입은 탓도 크다. 제사를 비롯한 각종 의식에 향이 빠지지 않으므로 가지를 잘라 쓰거나 살아있는 줄기의 일부를 떼어내어 이용하면서 줄기가 흔히 비비 꼬이게 된다. 특히 문묘나 향교, 서원 등 제사 공간에 있는 향나무는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까이는 창덕궁 규장각에 자라는 천연기념물 194호 향나무가 대표적이다.

노백도의 나무줄기는 가장자리에 세로로 붓질을 여러 번 하여 짙게 나타내고 안으로 갈수록 연하게 그리다가 가운데는 하얗게 두어 줄기의 입체감과 질감을 나타냈다. 실제로 향나무 줄기의 껍질은 겸재가 붓질한 그대로 세로로 길게 골이 지는 것이 특징이다.

고목이 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위쪽 죽어버린 가지 끝부분이 천마도 등 옛 유물에서 친숙하게 만나는 당초문을 닮았다. 향나무 고목은 흔히 가지 끝까지 수분과 양분이 잘 올라가지 않아 꼬부라진 채로 죽어버린다. 오랫동안 썩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으므로 향나무 고목에서는 당초문 모양의 가지를 잘 볼 수 있다. 그림의 소장처인 리움미술관에서는 ‘잎은 먼저 옅은 물감으로 한 겹 칠한 후 그 위에 점을 가득 찍어 묘사했다’고 했다. 향나무는 짧은 바늘잎과 작은 비늘 모양의 잎이 섞여 자라지만, 나이를 먹으면 비늘잎이 많아지고 촘촘하게 모여 있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점으로 나타내는 것이 실경과 거의 일치한다.

향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라는 곳은 울릉도와 동해안의 암석지대이다. 정선은 금강산과 동해안을 따라 여러 번 그림 여행을 했다. 바위틈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티는 향나무의 기상을 보고 장수의 염원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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