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디지털 읽기] 애플 vs 페이스북 '실리콘밸리 대전' 다시 불붙었다

박상현 디렉터 2021. 2.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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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는 기업 간의 전쟁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흥미롭게도 대개 애플이 관련된 싸움들이다. 1980년대에는 마우스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두고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사이에 날카로운 말이 오갔다.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리던 애플이 아이디어를 도용당했다며 소송까지 갔던 사건이다. 2000년대에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해서 애플의 아이폰 인터페이스를 흉내 내자 잡스가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분노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일러스트=박상훈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실리콘밸리는 조용했다. 소위 ‘빅테크’라 불리는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테크 업계를 분할해서 검색, 소셜미디어, 전자상거래 등 서로 다른 왕국을 유지하며 직접 충돌하는 일을 회피했다. 이들이 각 영역에서 독점 기업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점점 커졌지만, 서로의 독점적 영역을 크게 건드리지 않는 무언의 신사 협정은 지켜졌다.

그랬던 실리콘밸리의 평화가 깨지고 있다. 이번에도 애플이 그 중심에 있다. 애플 CEO 팀 쿡은 지난달 28일 ‘국제 데이터 프라이버시의 날’을 맞아 개인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개인의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야만 테크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용자의 데이터를 얼마나 가져가는지를 숨겨야만 장사를 할 수 있는 기업”은 개혁의 대상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의 말 어디에도 ‘페이스북’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팀 쿡의 말이 페이스북을 정조준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이 두 기업은 작년 말부터 본격적인 여론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이렇다. 애플은 모바일 운영체제의 최신 버전인 iOS 14를 만들면서 애플의 기기에 탑재되는 앱들이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함부로 가져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절차를 넣었다. 과거에는 앱 사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 한 가져가도 된다고 ‘사전 동의’한 것으로 간주했다면, iOS 14에서부터는 가져가도 좋다고 일일이 동의하지 않는 한 불허한 것으로 간주하는 ‘옵트인’ 방식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언뜻 들으면 대단한 변화처럼 보이지 않지만, 페이스북은 많은 사용자가 개인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을 택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광고 수익의 절반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 페이스북의 주장이다. 구글과 함께 전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수익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난 타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애플은 순전히 사용자들의 개인 정보를 지켜주기 위해서 10년 넘게 이어져온 실리콘밸리의 평화를 깨고 페이스북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정을 내린 걸까? 그렇지 않다.

애플이 사용자 정보 보호 강화책을 들고나오자 페이스북은 주요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각 사용자에 따른 맞춤형 광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애플의 정책 때문에 소상공인들의 수익이 60%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페이스북의 주장이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거의 전적으로 광고비로 먹고사는 기업이다. 디지털 광고의 작동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꾼 이들의 광고 시스템은 소상공인들도 대기업과 대등한 광고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소상공인들을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여론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일 뿐, 페이스북은 자신의 수익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플이 나은 것도 아니다. 사용자들은 애플의 방침을 반기면서도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왜 이제까지 기다렸느냐고 비판한다. 결국 애플의 결정도, 페이스북의 저항도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 사용자와 소상공인 보호는 핑계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애플이 iOS 14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게 된 진짜 이유는 애플의 덩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애플은 작년 봄에 시가총액 2조달러를 돌파했다. 사우디 국영 아람코를 제외하면 유일한 ‘2조 기업’이다. 이번에 내놓은 아이폰12도 큰 히트를 치면서 분기 매출 1000억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계속 커지는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것이 주주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탄생 이후로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면 앞으로는 제품 외에도 서비스 부문을 수익원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애플의 계산이다.

서비스 부문 중에서도 작년 한 해에만 우리 돈으로 7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앱스토어는 특히 중요하다. 사용자들이 앱스토어에서 지출하는 금액의 30%가 애플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에 애플 입장에서 좋은 고객은 사용자들이 돈을 지불하며 사용하는 앱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아이폰 사용자들의 정보를 가져가 광고로 수익을 올리면서 애플에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 결국 애플이 페이스북이 개인 정보를 이용해서 장사하는 걸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개인 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페이스북의 돈줄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덩치가 지나치게 커진 기업들에 실리콘밸리는 이제 너무 좁아졌고, 다른 기업들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그들을 시장에서 밀어내지 않으면 주주들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팽창하는 제국들 사이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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