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천불이 나서 불을 켜는 사람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2021. 2.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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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쟁이나 대공황만큼은 아니지만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사람들이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썰렁한 농담이지만, 홧술을 많이 마셔서 넘어지면 외상도 입는다. 꼭 식당업종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주변 지인들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내·외상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속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처방을 준다. 요즘은 약봉지 뒤에 약물의 종류·효과가 상세히 적혀 있다. 아마도 약국의 복약지도가 구두로는 부족해서 아예 활자로 박아주는 것일 테다. 몇 가지 약이 섞여 있다. 속 쓰릴 땐 당연히 제산제다. 우리가 다 아는 거다. 위장관운동제라는 것도 있다. 마지막에 이해하지 못할 약이 하나 있다. 불안감을 개선해주는 약? 약사님께 묻는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아 예, 위가 아플 때는 심리적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목적으로 처방된 것일 겁니다.”

심리적 문제. 맞는 듯하다. 우리가 지금 마음에 병을 입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월급을 받는 사람도 불안하고, 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우울하고 불안해질 때 병원을 가기 전에 하는 자가처방(?)이 있다. 술이다. 술에 취하면 그 순간만큼은 많은 걸 잊게 해준다. 심지어 술 때문에 우울감이 더 증폭되고 깊어지는 걸 자학적으로 즐긴다고도 한다. 상처를 쥐어뜯듯이. 그게 반복되어서 결국은 진짜 처방을 받게 된다. 그나마 병원에 가는 건 참 다행스럽고, 권장해야 한다. 마음에 오는 병을 실물적인 병으로 취급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으며 술을 퍼마시거나 고통에 빠지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나는 현명하다. 속이 아파서 내과에 갔고, 불안장애치료제를 복용할 수 있었고, 여차하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면 된다.

“세로토닌은 도파민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한다.”

인간은 우울과 불안을 흔히 ‘마음먹기 달린’ 문제라고 보지 않고 인체 호르몬의 기전을 알아냈으며, 나아가 약물도 개발했다. 우리는 믿을 만한 이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효과적인 약물을 아주 싸게 처방받을 수도 있다. 최근 보도를 보니, 정부의 4차 재난지원금 지급 건이 표류할지도 모르겠다. 당과 정부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지 않은가. 냉정히 얘기해서 자영업자들에게 이것은 ‘4차’가 아니다. 보편 지원에 가까웠던, 그래서 액수가 적었던 지난 1~3차 재난지원과 달리 최초로 구체적인 영업 피해 보상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영업계에서는 ‘1차’라고 불러야 한다. 세로토닌이고 도파민이고 우리가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속이 쓰려서 자꾸 병원에 가는 일은 없어져야 하겠거니 해서 쓰는 말이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도 ‘실질적 재난지원금’이라는 훌륭한 처방을 받고 싶다. 우리나라는 꽤 부강한 나라가 아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수많은 기업들이 공적자금을 투입받아온 역사가 있다. 그 돈이 뭔가. 국민세금이다. 자영업은 무너지면, 그 기업이 무너지는 것만큼 심각한 일이 아닌가 묻는다. 왜 자영업은 방역에 협조하고 그 대가를 스스로 져야 하는지 답을 해달라. 자영업자들이 오후 9시 이후에 불을 켜는 점등시위를 시작한다고 한다. 천불이 나서 불을 켠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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