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고장’ 담양이 키운 딸기, 유럽까지 뻗어간다

담양/조홍복 기자 2021. 2.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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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맛] 전남 담양 죽향 딸기

지난달 29일 전남 담양군 봉산면 양지리 겨울 딸기 농장. 농장주 김혁중(61)씨가 방금 수확한 국내산 품종 ‘죽향(竹香)’ 딸기를 건네며 “선홍빛이 감도는 잘 생긴 모양새가 영락없는 국가대표 딸기”라고 말했다. 김씨가 시설 하우스 6곳(0.6㏊)에서 재배하는 딸기 중 절반이 담양군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죽향 품종이다. 지난달 초 죽향 1상자(2㎏) 경매가는 9만8000원. 다른 국내산 품종의 2배가 넘는 가격이다. 김씨 아내 문인숙(58)씨는 “값이 비싸지만 죽향 딸기처럼 예쁜 아이를 바라는 산모(産母)가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전남 담양군 봉산면 양지리 딸기 농장에서 갓 수확한 딸기가 수북이 담겨 있다. 담양군이 독자 개발한‘죽향(竹香)’품종이다. 선홍빛이 감도는‘국가대표 딸기’다. 대나무 고장으로 유명한 담양이‘딸기 1번지’로 변신했다. /김영근 기자

김씨 부부도 한때 일본 품종 ‘육보(레드펄)’ 딸기를 키웠다. 김씨는 “죽향의 당도는 평균 17.8브릭스(Brix)로, 육보(12브릭스)보다 훨씬 달고 과즙도 풍부하다”며 “금방 쭈글쭈글해지는 다른 품종과 달리 과육이 단단하다”고 말했다. 9월 초 심은 딸기는 이듬해 1~4월 수확한다. 연 매출 규모는 1억4000만원. 일본 품종을 재배할 때보다 5000만원가량 늘었다.

◇대나무 고장에서 ‘딸기 1번지’로

‘대나무 고장’으로 유명한 담양이 ‘딸기 고장’으로 변신했다. 담양은 충남 논산, 경남 진주·밀양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딸기 주산지로 꼽힌다. 도내 최대 소득 작물로 딸기가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국내산 딸기 품종 시장도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담양 지역 시설 하우스 딸기 농가 매출은 총 992억원. 토마토(190억), 멜론(92억), 시설 고추(32억) 등을 제친 압도적 1위다. 딸기 농가 1043곳(364㏊)에서 1만3000을 수확했다. 농가당 평균 매출은 9500만원에 달한다. 담양을 대표하는 죽향과 담향(潭香) 2개 품종은 서울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서 ‘프리미엄 딸기’로 대접받고 있다.

/담양군

담양군은 지난 2006년 딸기 품종 개발에 나섰다. 종자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딸기 국산화’에 도전한 것이다. 당시 국내 딸기 시장은 육보·장희(아키히메) 등 일본 품종이 90% 이상 장악하고 있었다. 일본에 지급해야 하는 ‘종자 로열티’가 연간 최대 320억원에 달했다.

독자적으로 딸기 신품종 개발에 뛰어든 담양을 두고 “작은 농촌 지자체가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사업비가 열악한 군 단위로는 이례적인 30억원을 투자했다.

이철규 담양농업기술센터 소장은 당시 신품종 개발 프로젝트를 이끈 주역이다. 국내와 유럽, 아시아의 대표 딸기 품종 100개를 고른 뒤 12개로 추려 교배했다. 종자 2만개를 대상으로 채종 작업을 벌여 우수 종자 100개를 선별했다. 7년여 연구 끝에 담향과 죽향이 탄생했다.

두 품종은 당도와 경도가 뛰어나고 잎 노화가 더뎌 주목받았다. 죽향 시험 재배에 참여한 박종석(62)씨는 “당도가 최대 19.8브릭스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죽향을 맛본 서울 백화점과 마트 구매 담당자들은 “‘괴물 딸기'가 나왔다”며 전량을 사들였다고 했다.

2017년에는 3번째 품종 ‘메리퀸’이 나왔다. 전국 기초 지자체 중 딸기 신품종을 3가지 보유한 곳은 담양이 유일하다. 지난해 딸기 품종 국산화율은 96%까지 치솟았다. 국립종자원에 등록된 국내산 딸기 보호 품종은 2005년 2개에서 지난해 43개로 늘었다.

담양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딸기 품종 개발 시설 하우스 10동과 딸기 종합 실험실을 보유하고 있다. 전담 연구원만 9명이다. 이들이 지금도 딸기 신품종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 소장은 “신품종을 개발해 유통에 이르기까지 줄잡아 1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유럽 시장에 25년간 로열티 받고 수출

담양은 1조3000억원 규모 국내 딸기 시장에 이어, 최근 해외 시장 진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죽향과 담향에 대해 2045년까지 25년간 유럽 전 지역에서 품종보호권을 확보했다. 유럽연합품종사무소(CPVO)를 통해 상업적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다. 품종보호권은 보호 품종의 종자를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증식과 생산·수출·수입·양도·대여 등에 관한 포괄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열티도 받게 된다.

최형식 담양군수는 “맛과 향이 우수한 담양의 딸기 산업을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며 “육묘(모종 키우기)와 재배, 유통과 가공을 통해 내수 시장 공략은 물론이고 유럽과 동남아 등 세계 시장에도 활발하게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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