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노예제 일상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2021. 2.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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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고용 유연화 정책의 하나로 파견법이 도입되었다. 정식 명칭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지만 직접고용 원칙을 파괴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태롭게 만들었다. 법 제정 당시에도 간접고용의 폐해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지만, 슬그머니 법이 통과되었다. 비상시국이기에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비상시국이 끝나면 다시 정상적인 노동의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 믿었다. 2001년 구제금융을 모두 상환하고 외환위기 극복 선언이 있었지만, 이 믿음은 처참히 배반당했다. 오히려 2007년 비정규직 보호 명목으로 여러 법을 시행하여 온갖 비정규직을 합법화했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현재 누구도 도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 인간 한계를 부정하는 극한 노동을 일삼다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끝내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유연하게 만들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경제 논리 앞에 전면 폐지 소리는 아예 입도 뻥긋 못한다. 이러한 좁다란 경제 논리를 넘어 보다 넓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비정규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법은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반자본주의 악법이다.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베버는 현세에서 금욕노동을 실천하는 것에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를 본다. 모든 금욕이 그러하듯 노동도 행복의 즉각적인 실현을 포기한다. 그러면 고통이 따르고 이내 의문이 생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나? 내면이 일깨워진 근대인은 구원의 징표를 확인하기 위해 금욕노동을 한다. 이제 금욕노동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헌신해야 할 자발적 의무로 바뀐다. 베버는 이러한 종교 이야기로부터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 나왔다고 본다.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가진 경제인은 이윤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상을 금욕노동이라는 합리적 ‘수단’을 통해 조직한다.

한국인에게 금욕노동을 정당화해 준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성장주의’다. 민족과 가족의 성장(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위의 자발성을 인간 한계의 극한까지 끌어올려 금욕노동(수단)한다. 목적·수단 도식을 사용하여 일상을 합리적으로 조직한다는 점에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 같지만, 속에는 온갖 비합리성으로 골병이 들었다. 성장 하나 보고 이 모든 것을 버텼지만, 이제 이 이야기마저 파탄 났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무리 극한의 금욕노동을 실천해도 성장은커녕 생존마저 위태롭다. 그런데도 비정규직법은 여전히 노동자에게 비합리적 수단을 강제한다. 강제에 떠밀려 생존노동에 시달리니 소명의식은커녕 가슴속에 원한이 가득 들어찬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금욕노동을 감내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좋은 미래를 안내할 이야기가 없어 그저 눈앞 생존투쟁에 급급한다. 두려운 것은 이런 노예 윤리에 물든 세대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때 노동시장에 진출한 사람들은 비정규직을 한시적인 것으로 알고 수긍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출생한 세대는 비정규직을 아예 자신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으로 받아들인다. 잔혹한 한국 자본주의는 이들에게 극한의 금욕노동을 강제하여 이윤을 뽑아낸다. 원한에 싸인 울부짖음에 온 사회가 음습한 죽음의 전율로 휘청거리고 있다. 외환위기 비상시국을 틈타 시행된 비정규직법이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얼마나 더 계속 확인해야 하나. 내면을 온통 원한으로 가득 채운 노예를 대량 생산하는 사회가 과연 지속 가능한가? 비정규직법은 노동자에게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예제보다 더 악하다. 더 늦기 전에 반자본주의 악법을 완전히 철폐하여 노예제에 빠진 일상을 구출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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