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문인, 예술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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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으로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촬영 전에 손수 그린 콘티를 만화책처럼 만들어 배우에게 건넨다.
인물을 촬영하는 각도를 과감히 전환해 스토리텔링의 긴장감을 높이고 배경과 소품을 적절히 삽입하는, 영화의 몽타주 편집 기법 그대로다.
훗날 영화 '심청전'(1937년)을 연출한 이 삽화가가 동료 화가 문인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어떤 이미지에 이끌렸는지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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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교류한 자료 300점 선보여
첫 전시실 한쪽 벽에 걸린 삽화 6점은 봉 감독의 외조부인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의 작품이다. 1933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반년간’의 삽화를 직접 그린 것. 신문 지면에서 글과 함께 한 점씩 보았을 때는 무심히 지나쳤을 삽화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영락없는 만화식 콘티다. 인물을 촬영하는 각도를 과감히 전환해 스토리텔링의 긴장감을 높이고 배경과 소품을 적절히 삽입하는, 영화의 몽타주 편집 기법 그대로다.
이번 전시는 1930∼1950년대 우리 미술과 문학이 서로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을 공유했는지 조명한 기획전이다. 인쇄매체를 통한 화가와 문인 50여 명의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자료와 그림 300여 점으로 구성했다. 이상(1910∼1937)이 1936년 잡지 조광에 소설 ‘날개’를 발표하며 직접 그린 삽화는, 건축가이기도 했던 그가 활자와 그림이 이루는 균형과 조화에 얼마나 세심히 공을 들였는지 보여준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작품(‘우주’, 132억 원)을 그린 김환기(1913∼1974)가 20대 때 작업한 문학잡지 표지와 삽화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1920∼1940년대 신문 연재소설 인쇄본과 잡지, 시집 원본을 내놓았다. 1929년 동아일보 연작소설 ‘황원행’(김팔봉)에 덧붙인 안석주(1901∼1950)의 삽화 속 여인은 흑백영화 시절의 스타 그레타 가르보를 닮았다. 훗날 영화 ‘심청전’(1937년)을 연출한 이 삽화가가 동료 화가 문인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어떤 이미지에 이끌렸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상과 함께 책을 내고 자주 어울렸던 화가 구본웅(1906∼1952)이 홍명희의 연재소설 ‘임거정전’에 덧붙인 거센 필치의 삽화도 그의 회화 작품들과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후반부에는 장욱진 천경자 김환기 등의 화가들이 문예지에 발표한 글, 문인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찾아 소개했다. 김환기가 1966년 시인 김광섭에게 보낸 편지에 그의 점화(點畵)처럼 빼곡히 적힌 정갈한 글씨가 오래 눈길을 붙든다.
“비싸서 안 팔리는 시집을 자비로 내고 싶어요. 이런 것이 미운 세상에 복수가 될까. 요새 제 그림은 청록홍(靑綠紅) 점밖에 없어요. 왼편에서 수평으로 한줄기 점의 파동이 가고, 또 그 아래, 또 그 아래….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쏟아져 오는데 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참 모르겠어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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