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비관주의의 매력

남상훈 2021. 2. 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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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태도와 균형 맞추면 성과 더 올라
'어차피 안 될 것'이란 함정 꼭 피해야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사이에서 지금은 간신히 균형을 맞출 정도가 되었지만 젊을 때의 나는 비관주의자 쪽에 더 가까웠다.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 왠지 모르게 남들보다 내가 더 똑똑한 것처럼 느껴졌다. 말끝마다 “다 잘 될 거다, 희망을 갖자”라고 하면 깊은 성찰 없이 순진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여겨져서 싫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남들이 절망할 때 희망을 갖는 인물이 아니라 남들이 희망에 찰 때 절망하는 인물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현자로 추앙받는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비관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부정적이기 때문에 불행해진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가 우울에 빠지고 마는 건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좌절하고 분노에 휩싸이는 원인도 다름 아닌 긍정적 기대 때문이다. 자신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자아 이상(ego ideal)과 현실적인 자기 모습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비관적 태도를 가지면 실망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만은 덜 아플 수 있다. 무엇보다 비관주의의 진정한 매력은 기쁨을 배가시켜주는 데 있다. 생전에 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에 시달렸던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늘 이렇게 명랑하십니까?” 그는 말했다. “스물한 살 때 기대치가 0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모든 게 보너스였지요.” 낙천주의에 경도되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돼도 감흥이 적다.

부정적 태도를 잘 견지하면 성과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한 심리연구 결과를 보자. 피험자들을 두 명씩 짝 지어 네 그룹으로 나누고 협상 과제를 주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협상 주제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인 것을 비교하도록 지시했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긍정적인 측면만 고려하라고 했고, 세 번째 그룹은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라고 했다. 마지막 피험자 그룹에 속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지시 없이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협상 성과를 비교했더니 첫 번째 그룹이 나머지 세 그룹에 비해 협조도 잘 이루어지고 서로 윈윈하는 결과도 잘 이끌어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하는 것을 두고 멘털 콘트래스팅(mental contrasting)이라고 한다.

새로운 제안이나 시도에 대해서 나쁜 점을 꼬집어내는 건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이다. 인간은 위험을 대비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놔두면 부정적인 것이 눈에 더 잘 띄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비관주의자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완전무결성에 대한 열망이 큰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요소를 잘 골라내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크다.

비관주의자라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장애물에만 너무 집착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미뤄두는 습관을 가진 이들 중에는 비관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가 생길 것에만 집중하니 시작할 맛이 안 생기는 것이다. ‘어차피 안 될 텐데, 시작해서 뭐해’라는 생각에 빠져 동기를 잃는다. 이런 태도가 자기 충족적 예언(self fulfilling prophecy)으로 작용해서 실제로 일을 망치기도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딱 이런 상황에 해당한다.

활용할 수 있는 팁 하나.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길 때 문제점이 너무 많다고 느껴져서 시작할 엄두가 안 나면,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50% 정도만 해결한 뒤에 일단 추진해본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여기면, 아무것도 못 한다. 미리 정해둔 양만큼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다시 고민하겠다고 남겨 둔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자연히 해결되는 문제도 있고, 처음에는 장애물로 여겼던 것이 막상 실행하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될 것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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