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속에만 사는 과학자들이여, 자연을 몸으로 겪어보라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⑩]
[경향신문]
사람들 사이 ‘관계 맺음’의
확률이 일정하다는 ‘에르더시 모델’
실제로는 쏠림현상 일어나는 게 보편적
지난 몇 년 사이에 필자에게 있었던 제일 큰 사상적 사건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자연(自然)의 재발견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자연과 만나는 지점에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하는 숙명에 던져진 존재이고, 우리가 가하는 자극에 자연이 어떻게 반응하고 작동하는지 알아내려는 것이 과학이므로 과학자의 삶의 결과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고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물론 과학에서 말하는 자연은 산과 바다를 포함한 연구 대상이 되는 계(system) 일반을 뜻하는데, 필자가 주되게 연구하는 네트워크도 이에 포함된다. 네트워크는 인터넷, 먹이사슬, 사회관계망 같은 것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중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그래프 이론과 연관이 깊다. 그래프 이론으로 잘 알려진 20세기의 대표적 수학자로는 헝가리 출신의 에르더시 파알(1913~1996·헝가리는 우리처럼 성을 앞에 쓴다)이 있다. 에르더시는 무려 500명과 논문을 함께 썼는데, 전 재산을 여행가방 하나에 넣고 낮이고 밤이고 함께 일하고 싶은 수학자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려 함께 일을 시작하고, 끝나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며 평생을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음에 특별히 관심이 생겼는지 ‘에르더시 그래프’라고 부르는 수학적 모델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이 모델에서는 두 사람이 친구로 맺어질 확률이 일정한데, 예를 들어 10%라고 하면 101명이 있는 집단에서 한 사람이 나머지 100명 가운데 평균적으로 10명과 친구가 된다는 모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률이므로 모든 사람이 정확히 10명의 친구를 두게 되지는 않지만, 친구 숫자가 8과 12 사이일 확률은 59.6%인 반면, 20 이상일 확률은 0.198%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기댓값인 10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에르더시 모델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 연결망의 모델’을 만들고 그 성질을 성공적으로 알아냄으로써 유명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실제의’ 사회 연결망을 모두 설명해냈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친구 숫자(또는 인터넷 위에서 라우터들의 연결 개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의 전파에선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의 숫자)는 에르더시 모델의 예측과는 달리 소수의 사람들에겐 매우 크고, 나머지 사람들에겐 적은 경우가 허다하다. “상위 20%가 부의 80%를 갖고 있다”는,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1848~1923)의 이름을 딴 ‘파레토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셈인데, 20세기에 이러한 사실을 알아낸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교육학자 제이컵 모레노(Jacob Moreno·1889~1974)이다.
모레노가 뉴욕 시내 학교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소시오그램(sociogram)을 보면 친구가 많은 아이(큰 원)와 적은 아이(작은 원)가 구별되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초중학생 시절 전교 인기생을 보면서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생각한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결코 본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알기 바란다. 내가 그러했듯이.
자산이든 친구의 숫자이든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주 근엄한 사회경제학적 함의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모든 사람은 동등한 확률로 친구가 된다’, 즉 ‘사람은 거기에서 거기다’라는 아주 틀린 가정을 했던 과학자의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이다. 물론 에르더스 본인이 모레노의 결과를 알고 있었는지, 현실과 자신의 모델 사이 괴리를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를 일이지만, 수학자의 자기인식과 현실의 간극에 관해 직접 목격한 일화가 있다.
그래프 이론은 상당한 수학적 논리력과 계산력을 필요로 한다. 몇 년 전 참석한 네트워크 과학학회에서도 한 수학자가 아주 복잡한 계산 결과를 설명하는 장면을 언제나처럼 약간의 감탄과 약간의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로써 사회 연결망의 문제를 해결했다”며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농담을 의도한 것인지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사교적이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디 신나게 놀러다니지 않을 것 같은 만화 속 캐릭터 같은 수줍은 외골수 수학자가 사회 연결망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하는 부조화스러운 상황에 참지 못하고 혼자 웃고야 말았다. 혹시 에르더시도 그랬을까? 이들은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모델이 현실세계보다 ‘더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까?
‘물리학자에게는 소가 공으로 보인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과학자의 머릿속과 현실의 간극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
그런데 이 같은 과학자의 머릿속과 현실의 간극은 꽤나 흔히 보는 현실일 수 있다. 학생 시절에 한 교수님 연구실 문에서 “당신이 물리학자라는 근거(You are a physicist if…)”라는 제목의 목록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 하나는 “말(馬)이 둥근 공으로 보인다”였다. 이와 유사하게 ‘공 모양의 소(spherical cow)’라는 밈(meme)이 있는데,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공으로 그려놓고 궤적을 계산한 다음 “문제 다 풀었다”라고 물리학자들이 한다는 것을 비꼬는 뜻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실 일정 정도의 추상화는 쓸모있는 과학적 모델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비둘기가 날아가든 말이 달려가든 자동차가 굴러가든 모조리 공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내는 물리학자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데 나도 이견은 없다. 하지만 하나 고백하자면 당시 ‘말이 공으로 보인다’라는 말을 나름 물리학자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남들은 수긍하기가 쉽지 않은 자신감을 갖는 것이 직업인의 측면에서 꼭 나쁜 것은 아닐 것이므로.
물론 모든 물리학자가 언제나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실제 세계 속에서 의미있는 발견을 하기 위해 아주 미세한 수준에서까지 모든 것을 꼼꼼하고 진지하게 따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실험물리학이라는 것을 전공하기 시작한 친구들이 아주 작은 체임버(용기) 안에 진공을 구현하기 위해 매우 정밀한 기계들과 긴 시간 씨름을 하기도 하고, 전자기 차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며칠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백개의 실험용 부품을 하나하나 검사하면서 손톱만큼 벗겨진 불량 피복을 찾아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물론 대학 실험실이라는 잘 통제된 공간이었지만 자연의 법칙은 그 안에서도 엄격하게 작용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길을 찾는 일에는 극한의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는 조금 달리 이론물리학을 선택한 나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시간 전부를 책상에 앞에 앉아 종이 위의 수식이나 화면에 떠 있는 컴퓨터 코드와 씨름하면서 보내게 되었기 때문에 이성과 논리를 벗어나 자연을 몸으로 실감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계기가 생길 때까지는.
모터사이클을 통해 교과서로만 배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실제로 사용해보며
그동안 알지 못한 자연의 모습에 눈떠
자연은 언제 어디서든
예상 못한 충격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자,
인간이 완벽히 알 수 없는 무한한 수수께끼
2013년 제작된 <우리는 왜 타는가(Why We Ride)>라는 모터사이클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유명한 레이서, 열정적인 라이더들, 그리고 일상 속의 가족들이 거의 예외 없이 그것이 가져다주는 해방감과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한국영화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하는 모터사이클 장면은 1997년도의 <비트>에 나온다고 하는데, 그처럼 보호장비 없이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떼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공도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행위로 감히 라이딩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분명히 밝힌다).
나의 경험에 그 자유와 해방감의 원천은 라이더를 둘러싼 자연이 비와 바람의 형태로 아무런 가림막 없이 바로 몸에 와닿는 데 있는데, 이것은 비와 바람이 조금도 몸을 건드릴 수 없도록 외부로부터 사람을 철저히 격리시키는 ‘안락함’이 목적인 승용차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와 자연 사이에 아무런 가림막이 없기 때문에 성가실 때도 많다. 여름날 어두운 시골길이나 산길을 가다보면 헬멧창에 부딪힌 벌레들로 인해 멈추고 헬멧 닦기를 반복해야 하고, 길가에 나와 잠든 뱀이나 개구리를 밟기 직전에야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정신을 곤두세우고 피할 곳을 찾아야 하거나, 강한 횡바람 때문에 코너링을 하듯 모터사이클을 기울이고 직진을 하는 묘한 상황도 흔하게 겪는다.
하지만 바람이 부는 대로 맞으며 길을 돌아돌아 가다보면 승용차를 타고 지나다간 결코 찾을 수 없었을 절경들이 눈에 갑자기 들어오기도 하고, 최신 문명이 비켜간 듯한 곳에 자리 잡은 역사의 흔적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인공적인 편안함을 포기함으로써 자연이 던지는 고난을 버티는 대가로 얻게 되는 전 세계 라이더 공통의 해방감과 발견의 기쁨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모터사이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순한 라이더가 아닌 물리학자로서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연의 모습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옆으로 넘어질 일이 없으므로 핸들만 적당히 돌려주면 되는 사륜차와는 달리 모터사이클의 주행은 손으로 전해지는 도로의 미세한 피드백에 기반해 최적의 자세를 찾고 시선을 처리하는 라이더의 실력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데, 교과서와 기초 실험만을 통해 배웠던 뉴턴의 운동법칙을 실제로 사용하며 매 순간 자연과 직접적인 협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몸과 머리가 전율하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또한 카운터스티어링(countersteering)처럼 직관에 반하는 기술들은 운동법칙을 쉽게 생각하고 ‘말이 공으로 보이던’ 물리학자에게 물리학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해야 한다는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처럼 자연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게 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을 느끼게 할지 모르는 존재이다. 하지만 또한 자연(自然), 즉 ‘스스로 그러하다’는 이름에 걸맞게 인간이 어떠한 생각을 하든 어떠한 일을 꾸미든 무심한 모습을 보이며 인간이 완벽히 알 수 없는 무한한 수수께끼라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독자들은 자연과 만나면서 자연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네트워크과학·복잡계과학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데이나-파버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시스템스 생물학을 연구하고,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와 예술의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제주도에 현무암 상징물 ‘팡도라네’를 공동 제작·설치했고, 대전시립미술관의 ‘어떻게 볼 것인가: 프로젝트 X’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창시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남는 시간에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박주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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