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2명이 20명 돌본 날도 있었다"
[경향신문]
휴일수당 아끼려 대체휴가 강요…임금 줄고 업무 늘어
노조 “쪼개기계약 금지·고용안정 보장 지침 마련해야”
3년차 요양보호사 A씨(60)는 지난해 봄 민간 요양보호기관에서 사직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 기관 측은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렵다며 사실상 해고를 통보하면서 사직서에는 개인사정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는 내용으로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그해 여름 A씨는 다른 민간 기관에 6개월짜리 계약서를 쓰고 취업했다. 짧은 계약기간이 마음에 걸렸지만, 기관 측이 “6개월 후 계약서를 새로 쓰고 더 일하게 해주겠다”고 해 넘어갔다.
계약서상 휴게시간이 보장돼 있었지만 오전 8시 출근부터 오후 7시 퇴근까지 쉴 틈이 없었다. 야간 근무자가 쉬어 밤새 어르신들을 챙길 때도 한 달에 5일이나 됐다.
A씨를 포함한 요양보호사 10명이 24시간 내내 돌아가며 어르신 21명의 식사와 목욕은 물론 치유 프로그램의 보조, 청소, 수기 서류 작성 등을 담당했다. 연차도 기관에서 임의로 일정을 짜놔 정작 요양보호사들이 집안일로 쉬어야 할 때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가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은 약 200만원이었다.
A씨는 또 직장을 잃었다. 지난가을 기관 원장은 “추위를 많이 타시니 건강관리 잘하시라”고 했다. 계약된 연말까지만 출근하라는 뜻이었다. 동료도 같은 통보를 받았다. 현재 무직 상태인 그는 “매주 1~2번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게 정말 싫었지만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 ‘필수노동자’인 요양보호사들이 노동강도 강화, 임금 감소, 상시적인 해고에 시달리고 있다. 50~60대 여성이 대다수인 요양보호사는 지난해 기준 약 44만명이 활동 중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요양서비스노조는 4일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쪼개기 계약 금지와 고용안정 보장 지침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올해부터 30인 이상 민간 사업장에도 관공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됐다. 민간 요양기관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인력은 늘리지 않고, 휴일수당을 주는 대신 대체휴가를 쓰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일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 노동강도가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 4명이 하루 14~20명의 노인을 돌보는 경기지역 한 요양원에서는 지난달 2명이 근무한 날도 있었다.
요양기관들의 쪼개기 계약도 코로나19 이후 확산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들과 보통 1년 계약을 맺던 기관들이 경영 상황에 따라 해고를 더 쉽게 하기 위해 1~3개월짜리 단기계약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재가·방문요양보호사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보통 두 가정을 방문해 140만원가량을 벌었는데, 보호자들이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방문을 거절하면서 수입이 절반으로 깎인 경우가 많다.
사회보험 가입, 수당·퇴직금 지급 의무 등을 피하기 위해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계약을 맺도록 하는 기관도 부지기수다. 전지현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정부가 코로나19 시기의 해고금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처럼 월 기준 근무시간을 정하고 최소한 그 시간만큼의 급여는 보장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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