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밝혀지기까지 31년

권기정 기자 2021. 2. 4. 21: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살인사건' 21년 옥살이
최인철·장동익씨 재심 '무죄'
"고문했던 수사관 공개하라"

[경향신문]

만감이 교차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인 최인철씨(왼쪽)와 장동익씨가 4일 오전 부산고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법정 밖에서 축하 꽃다발을 들고 있다. 이날 재심 재판부는 선고 후 피고인들에게 사죄했다. 연합뉴스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쓰고 21년간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 2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살인사건 발생 31년 만이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곽병수)는 4일 강도살인 피의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뒤 모범수로 출소한 최인철(59), 장동익(62)씨가 제기한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최씨에 대해서는 공무원 사칭에 대해 일부 유죄 취지로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불법체포 및 불법구금 상태에서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경찰의 고문 및 가혹행위가 이뤄졌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문과 가혹행위로 이뤄진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어 강도살인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 판결을 내린다”고 밝혔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4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30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부산 북부경찰서는 사건 현장에서 시신 외에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사건 발생 1년10개월 뒤인 1991년 11월8일 부산 사하경찰서는 최씨와 장씨를 별건인 공무원 사칭 혐의로 임의동행해 조사하면서 이들로부터 살인사건의 범행을 자백받았다. 이들이 데이트를 즐기던 남녀를 차량으로 납치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숨지게 했으며, 폭행당한 남성은 탈출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1992년 8월 부산지법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1993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두 사람은 2013년 모범수로 특별감형돼 출소한 뒤 “경찰에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며 주장했다. 이어 두 사람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등에 DNA 검사 등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의 항소심과 상고심을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후 이들이 2017년 5월 청구한 재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018년 7월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사를 진행해 2019년 4월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과 이를 검증하지 않은 검찰의 부실수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부산고법은 2020년 1월 판결문에서 “경찰의 직권남용, 불법체포, 물고문 등 가혹행위가 인정된다”면서 “가혹행위가 인정되는 이상 피의자의 자백은 허위사실에 해당해 재심 사유가 된다”며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두 사람은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법정 밖에서 “왜 당시 고문 수사관을 공개하지 않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최씨는 “무죄가 나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며칠 잠을 못 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기쁘고 누명을 벗었다고 생각하니 다른 일을 해서 힘을 내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문 수사관에 대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겠느냐. 그 사람들은 악마다. 절대 용서란 없다”고 말했다. 재판 전에도 법정 앞에서 “저를 고문한 경찰관 공개를 원한다. 왜 피해자는 공개하는데 가해자는 공개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장씨는 “33세에 수감될 때 아내는 29세였는데, 지금 딸이 24세이고 아내는 51세가 됐다”며 “저와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선 안 된다. 진범 100명을 놓쳐도 억울한 사람 1명을 만들면 안 된다”고 밝혔다.

고문 경찰 공개와 관련, 두 사람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공개하면 명예훼손 문제가 생긴다”며 차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