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상황 살펴야" 입법부 눈치 본 사법부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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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그 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
임 부장판사가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하자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며 난색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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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공개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난해 5월 22일 면담 녹취록과 음성파일에는 김 대법원장이 여권의 법관 탄핵 움직임을 의식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법원 예규상 징계 중이거나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일 때만 사표 수리를 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김 대법원장은 법률적 판단 대신 정치권의 상황을 의식해 사표 수리를 유보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3일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문을 낸 것이 거짓말로 드러나 사법부 수장이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 입법부 눈치 본 사법부 수장
녹취록 등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22일 대법원청사 11층 집무실에서 임 부장판사를 1대 1로 면담했다. 임 부장판사가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하자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어 “나도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보고 할 테니까. 예를 들어 국회가 다시 열렸는데, 법사위나 이런 데서 탄핵 이런 것에 대해서 지금 같으면 나오겠지. 수위가 어떻게 될지 봅시다”라고 답했다. 또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그냥 수리하면 탄핵 얘기를 못하잖아”라고도 했다.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가 면담한 날은 21대 국회가 출범하기 8일 전이었다. 총선에서 당선된 판사 출신 이탄희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을 탄핵 하겠다”며 국회가 출범하면 법관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회 차원에서 법관 탄핵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법률적인 이유가 아닌 국회의 탄핵 가능성을 언급하며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발언이 법관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여당과 법관 탄핵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냐”고 했다.
임 부장판사 측은 “올 2월 법관 정기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14일 다시 한 번 종전에 제출한 사표를 수리해 사직 처리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하지만 올 2월 말로 임기가 만료되는 다른 법관은 사직 처리하면서도 임 부장판사는 임기 만료로 퇴임하라는 것이 김 대법원장의 뜻이라는 연락만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 ‘국회에 거짓말’…야당, 형사고발 검토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을 거론하며 사표를 반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3일 오후 1시경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고, 임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야당인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의 질의에도 똑같은 답변을 제출했다.
사법부 수장이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법원 내부에선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거짓말 논란을 넘어 국민의힘은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와 직권남용 혐의 등을 적용해 김 대법원장을 형사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4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명백한 허위공문서 작성이자 행사”라며 “제출된 사표를 사유 없이 수리하지 않았다면 직권남용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김 대법원장에 대한 국회 탄핵과 형사고발 절차에 대해 당내 의견을 모아 추진하다는 계획이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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