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게임사로 완벽 변신한 소니, 창사 첫 순익 1조엔 넘었다
일본 소니가 1946년 창립 이후 75년 만에 한 해 순(純)이익 1조엔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소니는 “2020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잠정 순이익이 전년도보다 86.4% 증가한 1조850억엔(약 12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일본 증권가에서는 소니 순이익이 8000억엔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연말에 실적이 급격히 개선되면서 불과 4개월여 만에 우리 돈으로 3조원 이상 순이익 규모가 커진다는 것이다.
비결은 콘텐츠 사업 호조다. 지난해 11월 나온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가 출시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물량 부족을 겪을 만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고 소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 지난해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에 오르는 등 콘텐츠 사업에서 연타석 홈런을 터뜨렸다. 순익 1조엔 전망치를 발표한 이날 뉴욕 증시에서 소니 주가는 하루 전보다 12% 넘게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업계에선 세계 전자 업계를 호령했던 소니가 2000년대 들어 한국·중국 업체에 밀려나는 위기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뼈를 깎는 구조 조정 끝에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샤프(TV·가전), 도시바(노트북·반도체) 등 다른 일본 업체들이 기존 전자 사업에 집착하다 주력 사업체들이 줄줄이 해외에 팔려간 것과 달리, 과감한 혁신으로 예전의 위상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워크맨 잊어라…게임·콘텐츠 기업 소니
소니가 콘텐츠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기까지는 긴 성장통이 있었다. TV·노트북 사업이 죽을 쑤던 2000년대 중반 소니는 게임·영상 사업을 키우겠다며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가인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필름 총괄역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스트링어는 적자인 전자 사업들을 정리하며 실적을 개선해 주주들에게 ‘푸른 눈의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단기 성과에 급급한 경영진에게 실망한 기술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소니는 2011년 역대 최악인 4600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갈팡질팡하던 소니는 지난 2012년 히라이 가즈오 전 회장 취임 이후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소니가 보유한 기술력과 콘텐츠를 융합하는 새 전략을 짠 것이다. 한 콘텐츠를 가전·스마트폰·게임기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게 제작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안착시켰다. 예를 들어 자사가 판권을 가진 만화 스파이더맨을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또 자체 제작하던 게임 소프트웨어를 외부 업체와 공동 개발해 다양성을 확보했고, 온라인 게임 구독 서비스도 발 빠르게 내놨다. 플레이스테이션 온라인 유료 회원(4600만명)은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1500만명)의 3배가 넘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소니는 지난 2000년 회사 전체 매출에서 전자 사업 비율이 69%, 음악·영상 16%, 게임 9%였지만, 2020년엔 전자 22%, 음악 19%, 게임 31%로 역전됐다.
소니가 지난해 미 CES에서 자율주행차를 공개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업계에선 소니가 자율차에서 즐길 콘텐츠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에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식이다. 요시다 겐이치로 회장은 올해 CES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창조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IT업계 한 고위 임원은 “소니는 다른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개발에 골몰할 때 그 안에 들어가는 고부가 가치 콘텐츠 개발을 준비하는 식으로 과거 일본 기업에서 보지 못했던 성공 공식을 새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급 부족이 변수
소니는 게임·영상·음악 사업 외에도 자동차 보험 등 금융 사업을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우며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 사업도 순항 중이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실적 잔치 이후로 소니가 일시적으로 부진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심화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에 넣을 CPU(중앙처리장치) 칩 확보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플레이스테이션은 출시 첫 1년 동안 목표인 760만 대 이상 생산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생산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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