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1유로 환경소송
[경향신문]
1유로(약 1300원)의 가치는 크지 않다. 고작 과자 한 봉지를 사거나, 서울 시내 버스나 지하철을 한 번 탈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법정에서 내려진 ‘1유로 배상’ 판결의 무게는 다르다. 가해자의 잘못을 분명히 드러내며 엄중 경고하는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의미 있는 ‘1유로 판결’이 나왔다. 프랑스 파리행정법원이 3일(현지시간) 정부가 파리기후협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원고 측이 청구한 1유로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피고는 프랑스 정부, 원고는 그린피스 프랑스, 옥스팜 프랑스 등 프랑스의 4개 환경단체다. 230만명 이상이 청원에 함께 동참하며 세기의 소송으로 불렸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는 네덜란드의 우르헨다 판결이다. 2015년 네덜란드 환경단체 우르헨다 재단과 시민 886명이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이 부족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청구금액이 아예 없었다. 정부를 향해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 줄이라고 한 이 판결은 2019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정부는 네덜란드 혼자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단호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모든 국가가 자기 몫을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생명권·환경권 등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2019년 네덜란드, 지난해 아일랜드 대법원이 국가의 기후변화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데 이어 프랑스의 판결까지 나왔다”며 “한국의 움직임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세계적 물결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이 방치하는 기후위기에 분노한 세계의 시민들이 소송전에 나서고 있다. 영어 ‘priceless’는 말 그대로 하면 ‘가격이 없는’이지만 실제론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이란 뜻이다. 배상액이 없다시피 한 환경 판결들에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1유로 판결이 내려진 곳이 현재의 기후변화 목표 탄생지 파리라는 점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송현숙 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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