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노래한다 - 데니스 우드 [이서수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내가 처음 접한 지도책은 사회과 부도였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호랑이 꼬리에 있는 포항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보라고 말한 뒤 분단 사이를 걸어 다니며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는 아이를 색출했다. 발각된 아이는 수치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호랑이 꼬리를 찾지 못해 쩔쩔맸는데,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이 장면은 사회과 부도에 대한 나의 최초 기억이다. 아무리 봐도 호랑이 꼬리처럼 보이는 곳이 없어서 나만 잘못된 책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던 순간이다.
<모든 것은 노래한다>의 저자 데니스 우드는 지리학계의 이단아다. 그는 학생들과 보일런하이츠라는 미국의 작은 동네를 방문해 지도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 지도들은 좀 이상했다. 밤하늘의 별을 표시한 지도, 전선 때문에 가지가 잘린 나무를 표시한 지도, 핼러윈에 호박 등을 걸어놓은 집을 표시한 지도, 라디오 전파 파면을 표시한 지도, 집마다 키우는 개의 품종 혹은 이름을 표시한 지도, 짖는 개를 표시한 지도까지. 어쩌면 몇 명쯤은 관심을 보일 법도 하지만 대다수는 이게 지도인지 되묻는 지도들이었다.
데니스 우드는 기존 지도에 담긴 객관성을 믿지 않았다. 그것 또한 누군가의 주관적 시선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다양한 지도를 제작했고, 이를 통해 장소를 입체적으로 탐구했으며, 무엇보다 지도의 개념을 크게 넓혔다. 수십년 전 지도로 만든 보일런하이츠는 이제 지도와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가 만든 지도가 더 이상 지도 기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의 기능은 누군가의 편의적 시선을 주입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노래한다>라는 제목처럼 지도는 우리 주위에 있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수많은 존재와 공존하려는 시도이자, 그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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