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탄핵 본질 흐린 '김명수의 거짓말'

조윤영 2021. 2. 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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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법관 탄핵]임성근쪽 녹취 파일 공개로 김 대법원장, 탄핵 언급 드러나
"기억 못했다..실망 드려 죄송"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국회에서 법관 탄핵이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임 부장판사 쪽이 4일 두 사람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전날 임 부장판사의 사표 반려 주장에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던 김 대법원장은 이날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며 하루 만에 사과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과 임 부장판사의 처신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라는 본질이 ‘처신 공방’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지난해 5월22일 당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담긴 26~38초짜리 녹취 파일 3개를 공개했다. 녹취 파일을 종합하면, 김 대법원장은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진 임 부장판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톡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탄핵하자고 (국회가)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말했다. 이어 “탄핵이 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일단은 정치적인 것은 또 상황은 다른 문제니까. (국회가)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며 “(정치권으로부터)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왼쪽),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전날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주장은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듯했다.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이 “김 대법원장은 면담 당시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탄핵 논의를 할 수 없게 돼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수리 여부는 대법원장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하자, 대법원은 곧바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녹취록 공개로 사실관계는 대체로 임 부장판사 쪽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정리됐다. 녹취록 공개 뒤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이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녹음자료에서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뜻을 표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임성근 부장판사와 실망을 드린 모든 분들에게 깊은 사과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만난 지 9개월 가까이 지나 기억이 희미했고 두 사람 사이에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눠 제대로 기억을 못 했다”고 거듭 해명했다.

김 대법원장이 진실 공방에서 체면을 구겼지만, 당시 사표 수리의 적법성이나 형평성 등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예규에는 징계위원회에 징계청구된 경우나 검찰·경찰 및 그 밖의 수사기관에서 비위와 관련해 수사 중임을 통보받은 경우 의원면직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구속영장이 청구되거나 공소가 제기되는 등의 사정으로 법관직을 유지하는 것이 사법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해친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원면직을 허용할 수도 있다.

임 부장판사의 경우 건강상 이유 등으로 사의를 표했지만 법관징계위원회에서 견책 징계처분을 받고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임 부장판사를 포함해 ‘사법농단’ 핵심 인물들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처분으로 대법원에 대한 비판이 거셌던 상황에서, 탄핵 논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대법원장의 사표 수리는 그 자체로 부적절한 대응일 수 있었던 셈이다.

다만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맞서 임 부장판사가 공개 반박에 나섰을 때 보여준 김 대법원장의 안이하고 솔직하지 못한 대처가 화를 키우고 문제의 본질을 희석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 임 부장판사의 상고심을 심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임 부장판사와 만난 것 자체도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판사는 “형사적 책임을 넘어 헌법적 차원에서 임 부장판사 잘못이 사라진 것이 아닌 만큼 사법농단 사건 본질이 희석돼선 안 된다. 이 사건이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지면 누구도 법원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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