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희망마을 프로젝트', "코로나19도 막을 수 없었죠"
"우리 동네 문제 해결엔 주민들이 직접 나서야죠."
마을기업 내마음은콩밭과 대구도시공사가 함께한 '어반그레이드' 프로젝트가 16개월간의 대장정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대구 지역 마을 3팀은 지역의 문제 발견부터 해결, 직접 실행까지 모두 경험하는 쉽지 않는 여정을 거쳤다.
'Urban’과 ‘Upgrade'의 합성어인 '어반그레이드'는 '도시를 업그레이드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구 시내 쇠퇴해가는 마을을 지역주민 주도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이 프로젝트 안에 담겼다. 마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참여형 소규모 도시재생 공모사업이다.
지난해 8월 시작해 당초 7월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닥치면서 부득이하게 마무리 일정이 밀리고 말았다.
서민정 내마음은콩밭 대표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해결방법을 알려준다는 차원에서도 의미 있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주민이 직접 문제인식부터 실행까지 직접
이번 사업은 총 11팀이 접수해 수성구 상동과 남구 대명동, 동구 신암동 등 3개팀이 선정돼 사업을 진행했다.
수성구 상동 '함장마을 환경파수꾼' 팀은 단독주택이 밀집되어 있고 원룸과 상권의 형성으로 생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했다. 전봇대 벽화를 비롯해 도로 안내문, 내 집 앞 쓰레기 버리는 존(zone)을 만드는 것을 비롯해 행정복지센터와 협의해 쓰레기 방지 로고라이트 설치, 환경 캠페인 사업 등을 진행했다. 여기다 인근에 독도 벽화를 그려 넣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지난 10월 독도의 날에는 주민들이 벽화 앞에서 독도 플래시몹을 펼쳐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신암5동 '신통' 팀은 마을 주민들의 안전 위험요소 해결을 위해 불안정한 인도를 정비하고 안전쉼터를 조성했다. 마을 고령화로 인해 빈집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대명3ㆍ4동 ‘양지골’ 팀은 마을 협동조합을 설립해 빈 공간을 활용한 커뮤니티 공간 조성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박승민 매니저는 "각자 주민들이 마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실제적인 해결방안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콩밭의 가장 큰 역할이었다"며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참여 가능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어려움 속에서도 '불씨' 꺼지지 않게
어반그레이드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관공서나 지자체의 주도 진행이 아닌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마을공동체가 마을의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주민들이 주체자로 활동하면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또 각계 전문가들이 멘토가 돼 조력자 역할을 한다.
서 대표는 "주민들이 스스로 하기에 힘들고, 전문가 컨설팅이 필요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장 코디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주민들이 의욕은 앞서지만 실행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신종 코로나 사태까지 겹쳤다. 서 대표는 “통상 주민들이 해결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주민들이 실행단계에서 기존의 틀과 방식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다 주민들이 자주 만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신종 코로나로 인해 모임 자체가 불가능해 계획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불씨가 꺼지기 일쑤였다.
내마음은콩밭+대구도시공사의 첫 번째 합작 프로젝트
어반그레이드 사업은 어떻게 탄생한걸까. 관 주도 도시재생사업이 정작 주민들의 실질적인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를 반영한 사업이 필요하다는 내마음은콩밭의 제안이 배경이었다. 이 같은 문제인식에 대구도시공사도 뜻을 같이 했다. 이번 사업이 1회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이 사업의 본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장후 대구도시공사 도시재생처 대리는 "도시재생사업은 단기간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실질적을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며 "지표만을 통한 분석이 아닌 보이지 않는 미래 효과에 주목해야한다는 점에서 내마음은콩밭과 생각이 일치 했다"고 말했다.
내마음은콩밭은 '사람을 통한 문화 디자인'을 모토로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커뮤니티 계획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공동체의 색깔이 된다는 믿음이다. 대구 북구 복현동에 거주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복현유사'와 각 가정만의 레시피와 사연을 담은 '경산러닝' 등이 그것이다. 이들 사업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지역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다.
도심 속 빈공간을 새롭게 탈바꿈
이들은 올해 사업 계획 수립에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도시 내 '빈 공간'에 주목해 이를 주민들의 도시재생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한편, 신종 코로나라는 주제와 연결해 새로운 사업 추진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또 올해 발생한 문제점 보완을 위해 내년 사업에는 좀 더 전문적인 멘토들의 도움을 비롯해 현장 코디들의 역할을 확대해 사업이 엇나가지 않도록 실무 전반에 걸쳐 지원키로 했다.
지역을 완전히 개발하고 바꾸는데 익숙한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의미조차 생소하게 다가온다. 이번 어반그레이드 사업처럼 자신들이 직접 주체가 된다는 것도 어색해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이들은 좋은 성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표현했다.
"주민들이 주도해나가는 방식을 통해 도시재생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이런 움직임이 계속된다면,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인식도 더욱더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이예주 · 정유미 객원기자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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