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이념과 신념의 유쾌한 터치..연극 '깐느로 가는 길'
8일 네이버TV 중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깐느로 가는 길'은 생경하지 않다. 지난 2019년 '제72회 칸(깐느)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깐느'는 국내 관객과 한층 더 가까워졌다.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영화제다. '깐느'로 가는 길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어려워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지난달 22~3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연극 '깐느로 가는 길'의 인물들에 깊게 공감한 이유다.
극의 주인공 '한정민'에게 깐느는 실체에서 멀지만, 수단을 위한 중요한 도구다. '권복인'에게 깐느는 수단이 아닌 그 목적이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두 인물에게 깐느는 하나의 이상향이다.
작품의 배경은 1998년. 민주화를 이룬 지 11년이 지났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받던 때다. 정민은 예술 영화를 수입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뒤로는 음란물 비디오를 길거리에서 판매한다. 단속반에게 걸리면, 죽자고 도망친다.
사실 정민은 그의 상관인 강신종과 함께 남파된 간첩이다. 영화광인 김정일이 지목한 한국영화의 필름을 입수해 북으로 보내는 것이 임무다. 공교롭게도 1998년은 북한의 최악의 식량난을 맞았던 '고난의 행군' 때였다.
그런데 다른 영화 필름은 모두 구했지만 영화 '무제'만은 도통 구할 수 없다. 작은 영화관에 개봉해서 겨우 7명이 본 영화. 우연히 감독을 찾아내지만 그는 자신의 필름을 불태웠다. 영화를 구하지 못하면, 정민과 신종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정민은 자신이 직접 '무제'라는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작가 지망생인 복인에게 시나리오를 부탁한다. 복인은 이 영화가 깐느의 비경쟁부문 '주목할만한 시선'에 출품될 예정이라는 정민의 거짓말에 속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친다.
'스타워즈'에 매료돼 있는 정민은 복인이 쓴 SF 장르에 꽂혔다. 하지만 엑스트라만 100명이 넘는 블록버스터를 초저예산으로 찍으려니, 당연히 영화 촬영은 산으로 간다. 아마추어 배우 네명이 섭외된다. 그나마 연기 경험자는 에로배우 출신이다. 제작비를 대는 사채업자도 배우로 나섰다.
사실 정민과 복인은 이 영화 촬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처음부터 안다. 하지만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를 그 촬영을 통해 입증해야 하니, 절박하다.
러시아 영화학교 출신의 수재인 정민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전문성을, 막바지에 숨은 정체가 드러나는 복인은 '이념의 배신'을 확인하려 한다. 그 역시 이념에 희생되고 버려진 자다.
정민과 복인은 양 극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사실 닮아 있다. 정민은 판타지를 원하지만 북한의 가족을 걱정하는 현실주의자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정인은 사실 자신이 만든 판타지에 갇힌 자다.
'이념적인 양극화 현상'은 형태와 방향이 다를 뿐 사실 같다. 각종 분야에서 양극단으로 나눠진 현재 대한민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정일 위원장이 영화광이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다양한 설정을 추가한 차근호 작가의 글은 문제의식이 단단하다.
최원종 연출은 초반에 유쾌한 터치를, 막바지에 묵직한 한방을 날리는 완급 조절이 탁월하다.
마지막 극은 파국을 맞이한다. 끝까지 신념을 지키려는 정민과 그 정민의 신념을 틀어서 자신이 버림 받은 이유를 합리화하려던 복인. 둘 다 각자의 세계에서 결국 인정받지 못하고, 무엇이 옳은지도 확인하지 못한다.
비극 위에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1969)의 OST로 유명한 '레인 드롭스 킵 폴링 온 마이 헤드(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울려 퍼진다. 영화는 1890년대 미국 서부가 배경으로, 은행을 터는 강도들의 꼬인 이야기다.
'깐느로 가는 길'의 총소리는 내일을 향하지 못했지만, '빗방울이 머리 위로 떨어져도 슬퍼하진 않을 거'라는 노래가 위로를 안긴다.
한정민 역의 김동현, 권복인 역의 오민석 등 출연 배우들이 호연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 중 하나다. 오는 8일 네이버TV를 통해 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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