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공매도 장려 정책'이 공정인가 / 김회승
[아침햇발]
전세계 증시의 핫이슈 ‘게임스톱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모양이다. 300달러(약 33만5천원)를 웃돌던 게임스톱 주가는 100달러 밑으로 밀렸고 거래량도 급감했다. 공매도와의 전쟁에 나섰던 개미들이 속속 이탈하는 분위기다. 전쟁을 주도한 ‘대장 개미’ 키스 길은 꿋꿋이 전장을 지키고 있지만, 주초 이틀간 폭락만으로 1800만달러(약 200억원)를 잃었다고 한다. 아니, 정확한 매수가를 알 수 없으니 아직 잃었다고 단정할 순 없겠다.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물론 공매도 손실로 판돈을 크게 키워준 헤지펀드를 패자로 볼 순 있겠다. 그러나 개미들 처지에선 비싸게 팔고 나온 이가 승자고, 고점에 들어간 이가 패자일 뿐이다.
매매 공방이 시들해진 건 헤지펀드들이 공매도 포지션을 상당 부분 청산했기 때문이다. 공매도 포지션이 손실 구간에 접어들면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주식을 더 사들여야 한다. 그런 ‘공매도 쥐어짜기’(쇼트 스퀴즈) 매수 물량이 줄었으니 주가도 상승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많은 시장 전문가들이 게임스톱 매매 공방을 작전세력의 진화된 양상이라고 냉소한다. 헤지펀드가 다소 무리한 공매도 포지션으로 허점을 보이자, 일부 큰손 개미들이 ‘월가를 응징하자’는 그럴싸한 구호로 세를 규합해 머니게임을 벌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악명 높은 거대 헤지펀드 여러 곳이 큰 손실을 봤다. 손실 규모는 적게는 20조원에서 많게는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더는 공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겠다며 항복 선언을 한 곳도 있다. 월가의 탐욕을 응징한 개미들의 혁명이라는 상찬은 과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트워크로 뭉친 ‘스마트 개미’들이 악명 높은 공매도 헤지펀드에 역사적인 한 방을 먹인 것만은 분명하다.
파장도 작지 않다. 미국 의회는 공매도 규제 강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조만간 게임스톱 사태를 다룰 청문회도 열릴 전망이다.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개인투자자 단체가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공매도 잔고가 많은 종목을 좌표로 찍고 실제 매수 공격을 시작했다. 과거엔 없던 일이다.
공교롭게도 금융당국이 엊그제 ‘공매도 금지’를 재연장했다. 제도 개선책도 여럿 내놨다.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하고 보궐선거도 있으니 양수겸장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공매도 불평등’의 핵심은 무차입 거래다. 주식을 실제 빌리지도 않고 파는 행위로, 법으로 금지돼 있다. 금융당국은 주식 보유잔고를 초과하는 매도주문 등 이상 거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무차입 거래를 신속히 적발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3년 전 삼성증권과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거래가 문제가 됐을 때도 만들겠다고 한 거다. 여론이 잠잠해지니 깜빡 잊고 아직까지 안 만든 모양이다.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무차입 거래를 원천 차단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무차입 거래는 지금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정 주식을 초단타 매매하기 위한 공매도 수요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물과 선물의 미세한 가격 차이를 활용한 차익거래 등에선 거래가 분초를 다툰다. 실제로 주식을 빌려 계좌에 들어오려면 1~2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전화나 메신저로 요청해도 차입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간주한다. 주식이 실제 입고되기 전에 공매도 주문이 먼저 이뤄지면 무차입 거래다.
이런 식의 무차입 거래는 사실상 사전 차단이 불가능하다. 사후 적발과 처벌이 가능할 뿐이다. 탈세를 사전에 막을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차입의 증거가 거짓인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면, 또 실제 잔고가 있는지 입증한 뒤 거래하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수많은 실시간 거래가 차질을 빚을 것이다. 공매도 금지와 다를 바 없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공매도 허용 범위를 축소하는 게 맞다. 시장 영향력을 더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은 개인의 공매도 접근권을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위험 투자인 만큼 거래 한도를 두고 사전 교육도 시키겠다고 한다. 공매도 장려 정책이다. 기관·외국인한테서 총을 빼앗을 순 없고, 너희들도 총 한 자루 줄 테니 싸워보라는 얘기다. 그러면 공정하지 않으냐고.
김회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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