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선의 치유하는 과학] 뇌는 고통을 아픔으로 잊으려 한다

2021. 2. 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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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그 어느 때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힐링이 중요해진 지금,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넓은 의미의 치유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연과 과학, 기술 안에서 찾고자 합니다.
1792년도 Richard Graves 번역으로 런던에서 1811년에 출판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첫 페이지 ©wikipedia

로마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였던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서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외부에서 일어난 어떠한 일로 고통받고 있다면, 그 고통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내부에서 그 고통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다. 그 고통을 당장에라도 멈출 수 있는 능력은 당신 안에 있다."

현대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내 안에서 느끼는 고통을 결정짓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통각 수용체가 활성화되어야 뇌로 "앗, 아파요"라고 신호를 전달하고, 다음으로 뇌에서 "응, 아프구나"하고 그 신호를 인지해야 한다. 아픔을 느끼는 통각 수용체는 다양한 종류가 있어서, 열, 물리적 힘, 화학 물질 등 각각 다른 자극에 반응한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통각 수용체의 숫자와 민감도도 제각각 달라서 고통을 느끼는 개인차가 생긴다. 통각 수용체는 신기하게도 온 몸에 분포되어 있지만, 뇌에만 없다. 그래서 뇌를 직접 찔러도 우리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뇌에서 고통에 반응하고 아픔을 인지하는 여러 뇌 부위들은 묶어서 통증 매트릭스(pain matrix) 라고 부른다. 뇌에서 고통을 느낄 때는 누가 때려서 아프건, 실연을 당해서 아프건, 모두 거의 같은 통증 영역을 활성화시킨다. 몸과 마음의 아픔이 둘 다 구분 없이 뇌에서는 같은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말이 칼보다 상처가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통을 뇌는 얼마나 오래 기억할까. 어떤 사람들은 출산의 고통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잊히기에 다시 애를 낳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 뇌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점차 잊을까. 실제로 영국과 스웨덴에서 아이를 갓 낳은 수천 명의 산모들을 대상으로 이 연구를 진행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시간이 2개월, 그리고 1년 이상 지나고 나서도 60%가 넘는 피험자들은 그 고통을 출산 직후와 같은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산모들 중 5분의 1은 오히려 기억하는 출산의 고통이 출산 직후보다 더 강해졌다. 5년 후에 이 테스트를 반복했을 때도 어머니들은 그 고통을 여전히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출산의 고통은 정말로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

고통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경험했던 고통과 다른 종류의 자극을 뇌에 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슬픈 음악을 들으며 감정에 몰입하게 되면 고통을 덜 느끼게 된다고 한다. 뇌에서 프롤락틴(Prolact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고통을 완화시켜 주고, 슬픈 감정을 온전히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감정 영역들이 고통의 기억을 저장할 때 좀 더 완화된 형태로 다시 저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실연당한 아픔을 슬픈 음악으로 치유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이유다.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혀가 느끼는 맛은 단, 짠, 신, 쓴, 감칠맛, 이렇게 다섯 가지 맛의 수용체로 느낀다. 하지만 매운 맛은 통각 수용체가 느낀다. 즉, 뇌 입장에서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의 신호다. 모든 통증의 신호는 뇌 안에서 통증 매트릭스로 모인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이 매우면, 뇌는 정말 큰 일이 난 줄 알고 "죽지 마" 이러면서 고통을 완화시키는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이때 다른 종류의 모든 아픔도 동시에 완화된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 개인차는 있지만.

고통에 익숙해지는 건 실제로는 불가능한데 우리가 스스로의 뇌를 속이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픔은 경험할 때마다 아프다. 우리는 그 아픔을 인지하지 않기 위해 그것을 부정하거나 또다른 아픔으로 덮어버리려 하는 것이 아닐까.

장동선 뇌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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