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윅픽]
[경향신문]
법원이 지난 1월12일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인 SK케미칼·애경의 기업 대표와 책임자 1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천식 간 인과관계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판결이 나온 뒤 여러 비판이 나왔습니다. 재판부가 검찰이 제시한 주요 실험 결과를 누락했다거나 피해를 입증할 실험 결과 해석을 왜곡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재판부가 동물실험 결과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기 때문에, 동물실험에서 문제가 없더라도 인간에게는 해를 끼칠 수 있는 화학물질이 많습니다.
재판부가 동물실험, 역학조사, 임상 연구의 의미와 한계점을 ‘종합’하기보다는 각 연구·조사의 ‘불완전성’에 주목해 마치 하나씩 격파하듯 논리를 전개한 것도 특징입니다. 재판부는 각 연구와 실험을 언급하며 “인과성이 떨어진다”, “연구 방법이 엄격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1심 재판 결과가 나오자 정부 책임론도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피해 신고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제품명과 사용기간 등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참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면밀한 정보를 축적해 놓았다면 피해자의 ‘기억’은 재판의 쟁점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검찰의 노력도 미흡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공판팀이 별도로 꾸려졌지만 구성원이 자주 바뀌었고, 2~3명의 검사만 공판에 투입됐습니다. SK·애경에선 대형 로펌 여러 곳이 힘을 합해 변호에 나선 것과 대조적입니다.
항소심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검찰이 공소사실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과 천식 피해만 다퉜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기도 질환까지 피해질환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공소사실을 변경하면 재판에서 근거로 쓰일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별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재판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피해자 개인별로 임상·병리학적 분석, 유전력, 환경 요소 등을 기록한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가습기 살균제가 발병의 결정적 원인임을 드러내자는 취지입니다.
항소심에서는 여러 이견들을 해소할 수 있는, 더 합리적인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김원진·박병률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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