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첫 법관 탄핵소추.."위헌행위 단죄" VS "판사 길들이기"

손서영 2021. 2.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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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국회는 오늘(4일) 본회의에서 288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79표, 반대 102표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앞서 지난 2일 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탄핵안에는 범여권 정당을 포함해 모두 161명이 참여했습니다. 발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오늘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이 나온 겁니다.

국회에서 법관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건 헌정사상 처음입니다. 앞서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과 2009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두 차례 탄핵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 판사 출신 이탄희 법관탄핵 주도 "헌법위반 단죄, 입법부 의무 다해야"

법관 출신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표결에 앞서 "이번 탄핵소추의 핵심은 피소추자를 단죄하는 것을 넘어서 '헌법 위반행위' 자체를 단죄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의원은 "단죄되지 않은 행위는 반드시 반복된다"며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지 못했고, 불과 2년 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취임 후 사법농단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헌법을 위반한 공직자는 헌법재판을 받아야 하고, 판사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 위반 판사를 헌법재판에 회부할 권한과 의무를 바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부여했다"고 밝혔습니다.

1심에서 임 부장판사가 직권남용 혐의에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헌법 위반 사실이 명백히 판시된 만큼 사법부 견제의 의무가 있는 입법부가 이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이 의원은 "결론과 재판은 헌법재판소의 몫이고, 국회는 재판 회부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며 "탄핵소추의 진정한 실익은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설계된 대로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국민과 국회가 함께 확인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헌정사상 첫 탄핵소추 임성근 부장판사…사유는?

탄핵소추안에는 임성근 부장판사의 헌법 및 법률 위반행위가 적시됐습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일명 '세월호 7시간' 재판에 임 부장판사가 위법하게 관여했다는 겁니다. 이 판사는 임 부장판사가 판결 선고 전에, 담당 재판장에 판결을 유출할 것을 요구하고 이메일로 전달받고 판결 내용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또 "법정에서 '세월호 7시간' 기사의 허위성을 명확히 선언하라"고 부당하게 요구하고 피고인을 질책하도록 부당하게 지시해 재판 절차 진행에 개입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밖에도 '쌍용차 집회 사건'과 '유명 야구선수 원정도박 사건' 등에서 판결문 중 정치적인 부분을 사후 수정하도록 하고, 종국 보고까지 이뤄졌음에도 벌금형을 발령하도록 유도하는 등 재판에 위법하게 관여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 野 고성·항의 "정치적 목적, 판사 길들이기" "김명수 탄핵해야"

국민의힘도 오늘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했습니다. 표결 전 반대 토론에 나선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민생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생뚱맞게 법관 탄핵이 웬 말이냐"며 "이미 1년 전 선고됐던 1심 판결을 갑자기 지금 추진하는 이유는 뭐냐"고 물었습니다.

김 의원은 "임성근 판사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고 본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탄핵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처벌은 재판 진행에 맡겨두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면 그 첫 번째 대상은 '김명수 대법원장'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녹취록을 통해 공개된 김 대법원장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누구와 무슨 내용의 탄핵 거래를 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임 부장판사가 국회에서 사실 조사가 선행되길 희망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주혜 의원은 "판사 길들이기의 불순한 목적으로 사법부를 정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명백한 정치 탄핵이며 역사적으로도 최악의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국회 떠난 '탄핵소추안'…최종 결론은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소추안은 곧바로 헌법재판소로 보내지고 정식으로 탄핵심판청구 절차가 진행됩니다. 헌재법에 따라 민주당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형사재판의 검사 역할을 하는 소추위원이 됩니다.

심판 결과 탄핵소추 사유가 인정되면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하게 되는데, 재판관 9명 중 6명의 동의로 결정됩니다.

문제는 임 부장판사의 퇴임 시기입니다. 오는 28일 임기가 끝나는데, 이 전에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미 퇴임해 법관이 아닌 사람에 대한 판단이 되는 만큼 헌법재판소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각하하거나 심판절차를 종료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실익' 없는 '정치적 목적'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다만 파면 선고를 하지 않더라도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헌법상 재판독립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위헌'이고 탄핵 사유가 된다는 상징적인 확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민주당 등은 이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한편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에 임 부장판사 측은 "1심 판결문 일부 표현만으로 사실상, 법률상 평가를 한 다음 국회 법사위 조사절차도 생략한 채 의결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심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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