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옷' 입는 전통시장, '전통'도 계속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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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출퇴근길, 오늘은 추위 때문에 잰걸음을 걷다보니 '영등포전통시장' 남문 입구가 보인다.
늘 지나치기만 하던 곳인데 오늘은 추위도 피할 겸 한번 찬찬히 구경이나 해볼까 싶다.
이곳에선 배부르게 한 끼를 더 먹을 수 있고, 옷도 한 벌 사 입을 수 있는 액수다.
몇십 년 동안 한결같은 일상을 이어온 꾸준함이 이곳 전통시장엔 아직도 생생히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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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이곳]
바쁜 출퇴근길, 오늘은 추위 때문에 잰걸음을 걷다보니 ‘영등포전통시장’ 남문 입구가 보인다. 늘 지나치기만 하던 곳인데 오늘은 추위도 피할 겸 한번 찬찬히 구경이나 해볼까 싶다. 마침 좀 출출하니 시장기도 도는데, 군것질거리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입구로 들어서니 요즘 젊은이 눈엔 낯선 풍경들 천지다. 곳곳에 들어선 옷가게에는 온갖 색의 부드럽고 고운 소재의 티셔츠와 여자들이 일할 때 입는 옷인 ‘몸뻬’ 바지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그뿐 아니라 ‘명품가게’도 있다. 이곳 옷가게들의 색조와 잘 어울리는 가방들 위에 붙은 광고 종이에는 익숙한 명품 브랜드 일부를 흉내 낸 알파벳 철자가 당당하게 씌어 있다.
가게 간판들은 주인의 고향 이름을 따온건지, 판매 품목의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는지 모를 ‘충주상회’ ‘영암집’ 등 지역색을 풍기는 이름이거나, ‘형제상회’ ‘대박집’ 등 구수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승부를 겨루는 이름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쯤 거슬러 올라온 느낌이다.
이곳저곳을 누비다보니 미로 속에 빠진 기분이 든다. 시장 안은 꽤 넓고 복잡하다. 비슷비슷한 가게들만 있다보니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장 안에는 지도도 없고, 이정표도 없다. 스마트폰 지도앱도 소용없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 없을 터다. 호기심에 한번 들러보거나 소일거리를 위해 오는 것이 아닐 테니. 그들은 이곳에서 매일 자기가 잘 아는 물건을 단골들에게 팔고, 또 단골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며 무엇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낱낱이 꿰고 있을 게다.
시장 구경에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영등포전통시장의 명물이라는 순대골목을 찾는다. 순대골목 입구에는 시장 명물답게 그럴싸한 아치문도 세워져 있다. 1955년부터 영업했다는 한 노포 순댓국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서 오세요”라는 푸근한 아주머니 음성이 들린다.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을 비워내니 가슴속까지 훈훈함이 차오르는 것 같다. 이마에 밴 땀을 슬쩍 닦고는 카드를 꺼내려다 말고, 아주머니께 1만원짜리 지폐를 건넸다. 1천원짜리 다섯 장을 돌려주신다. 이곳에선 배부르게 한 끼를 더 먹을 수 있고, 옷도 한 벌 사 입을 수 있는 액수다.
그러나 이곳 전통시장에도 이제는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노점 매대도 곧 새로 단장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경영 현대화 사업도 한다고 한다. 올해까지 마무리될 아케이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시장 한쪽에는 하얀 철골 기둥들이 뼈대처럼 서 있다. 그 기둥 사이사이로 자그만 가게들은 칼바람을 버티며 생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더 예측이 어려워진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재앙으로 당연하던 일상의 모습은 한 차례 파괴되고 다시 형성됐다. 그런 가운데 우리도 모르게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통이라는 오랜 역사 속에 단단히 다져온 가치일 수도 있고, 하루하루를 그저 묵묵히 제자리에서 버텨내는, 상인들의 오롯한 성실함일 수도 있다.
숨 가쁜 변화에 휩쓸려 가면서도 진정 가야 할 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바르게 내딛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방법이 아닐까. 몇십 년 동안 한결같은 일상을 이어온 꾸준함이 이곳 전통시장엔 아직도 생생히 존재하고 있다.
박미선 영등포구 홍보미디어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영등포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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