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누나가 가장 많이 타고 다닌 버스거든요".txt

연지환 기자 2021. 2. 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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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요. 기자세요?"

당황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너무 크게 멘트를 해서 시끄러웠나, 걱정했습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는 순간 "제 누나가 피해자예요."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서로를 잠시 쳐다봤고, 옆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인터뷰 허락을 구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파주 버스 문 끼임 사건' 피해자 가족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피해자의 남동생 역시 가장 많이 타는 대중교통이 버스라고 했습니다.

# 버스 문에 끼어 운명 달리한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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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20대가 버스 문에 끼어 끌려가다 숨졌습니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땐 피해자가 입고 있던 롱패딩이 버스 문에 끼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피해자 팔이 문틈에 낀 걸 버스 기사가 보지 못하고 출발한 걸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습니다. 난폭운전을 멈춰달라는 청원도 이어졌습니다.

# 취재진, 버스 총 50차례 타봤다

◆ 관련 리포트
[밀착카메라] 앉기도 전에 버스 출발…위험한 '시민의 발'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673/NB119896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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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계기로 JTBC 밀착카메라팀은 버스를 50번 타봤습니다. ①급정거·급출발, ②완전히 멈춘 뒤 내리기, ③마지막 승객이 내린 뒤 문을 닫는지, 세 가지를 집중 점검했습니다.

총 50대 버스 중 43대에서 급정거와 급출발을 했습니다. 카드를 찍으려다 출발하는 버스 때문에 비틀거리기 일쑤였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았다가 내릴 때 급정거 때문에 문까지 뛰다시피 하는 승객도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탄 버스 44대에서 승객들은 벨을 누르고 미리 일어나 있었습니다. 그래야 내릴 수 있었습니다. 기자도 늦은 저녁 경기도에서 벨을 누른 뒤 앉아있어 봤습니다. 정거장을 4개 지나쳤습니다. 계속 갈 수는 없으니, 결국 기사에게 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건너가서(반대로 가서) 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 문 끼임, 승객 다 내리고 '닫기' 버튼 누르는 게 가장 확실한 방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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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문 끼임'. 이것을 막기 위해 승객이 내리고 문을 닫는 건 어땠을까요. 취재진은 몇 초 뒤에 문이 닫히는지 직접 재봤습니다. 3초를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39차례 3초 안에 문이 닫혔습니다. 대부분 미리 문을 닫았습니다. 내리는 문 앞 발판엔 승객이 타고 내리는 걸 감지하는 센서가 있습니다. 버스 기사가 '닫기 버튼'을 눌러도 승객 다리를 감지해 '삐' 소리가 나고, 문이 닫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센서는 정강이 높이에 있습니다. 내린 뒤에 팔이 끼거나, 넘어져 발이 끼는 건 막을 수 없습니다. 미리 '닫기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 "누나가 생전에 제일 많이 타고 다녔던 버스가 이 버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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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버스를 50번 탔는데 여전히 급하고 빨랐습니다. 버스에서 만난 피해자의 동생 김동현 씨는 "아직도 이렇게 급하게 다니시는지 잘 몰랐네요. 심경이 좀 복잡하네요."라고 입을 뗐습니다. 자신도 앉기도 전에 출발해 넘어질 뻔 했다며 애써 웃었습니다. "누나가 생전에 제일 많이 타고 다녔던 버스가 이 버스거든요."라며 노선도를 눈으로 훑었습니다.

경기권 버스는 노선이 복잡합니다. 배차 간격도 상대적으로 깁니다. "집 앞에 버스 다니는 게 이거 한 대 뿐이에요. 누나도 맨날 이거 타고 다니고 했는데..." 동생도 누나가 가장 많이 타고 다닌 이 버스에 몸을 실어야 어디론가 갈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운행만 한다면 이런 사고는 덜 일어 날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 국토부, 버스 안전실태 집중 점검….'승객 승하차 확인 후 출발' 강화

지난 1일 국토부는 뒤늦게 버스 안전실태를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승객 승하차 확인 후 출발'을 포함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안전 교육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기사들 휴식 시간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등을 집중 점검한다고 합니다.

물론 기사들도 급하게 운전하고 싶진 않습니다. 한 기사는 "승객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내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전 운전하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빠르게 운행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문제는 배차 간격입니다. 다른 버스에서 만난 기사는 차가 막혀서 늦어지면 버스와 버스 사이가 벌어지기 때문에 조바심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민폐고, 회사도 지적한다고 합니다. 배차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바쁘게 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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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발행된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통계편람에 따르면 경기 지역 버스 기사 중 90%가 격일제 형태로 근무하는 거로 조사됐습니다. 1일 2교대 형태로 근무하는 버스 기사들은 4.5%에 불과했습니다. 피곤한 상태로 운행하는 기사들이 상당수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버스 회사 근무 형태를 바꾸고 인원을 늘리는 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버스 안 풍경에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비틀거리고, 미리 일어나고, 중심을 잡는 게 당연해졌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빨리 가는 것보다 생명이 더 중요시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사분들 인식도 바뀌고, 시민분들 인식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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