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준만 "부동산 실패 안긴 세력이 진보라고 할 수 있나"

김동철 2021. 2. 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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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내로남불식 '부족 정치' 하나" 정부 비판
2월 말 교수 정년.."퇴임 후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집중"
강준만 전북대 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성역과 금기 없는 실명 비판 문화를 뿌리내린 강준만(65)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2월 말 정년퇴임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4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부동산 문제의 처참한 실패로 서민에게 큰 고통을 안긴 세력이 다른 정치 의제에서 진보를 내세운다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을 진보라고 할 수 있나"라며 현 정부와 여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최근 펴낸 책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는 현 정부를 향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비판했고, 인터뷰를 통해 "내로남불은 정치적 부족주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강 교수와의 일문일답.

-- 정년퇴임 소감은.

▲ 우선 고마움이다. 전북대에 고맙고, 전라북도에 고맙고, 대한민국에 고맙다.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죄송하다. 제가 어쭙잖게 '평온의 기술'이란 책까지 냈는데, 이 책에서도 그간 자신이 누린 축복을 일일이 세어보면 행복은 저절로 온다고 했다. 너무 꼰대 같은 말을 한다고 흉볼 분들도 있겠지만, 그 누구건 막상 자기 개인의 문제에 닥치면 제 주장이 맞는다는 걸 절감하시리라 믿는다.

-- 많은 저서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 책을 저널리즘으로 간주했기에 특별히 애착이 간다든가 그런 건 없다. 다만, 가장 많은 독자를 만났다는 점에서 1995년에 출간한 '김대중 죽이기'를 꼽을 수 있겠다.

-- 인터넷신문 선샤인뉴스를 창간하기도 했는데 미래 언론은 어떨까.

▲ 선샤인뉴스의 경험은 제게 지역 언론을 보는 눈을 바꿔준 효과가 있었다. 그 전엔 지역 언론에 대해 비판 일변도였는데, 지역 언론의 근본적 어려움을 온몸으로 절감한 덕분에 이후 구조적인 한계와 여건을 지적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지역 언론을 비판하면 손뼉 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역 언론의 어려움을 역설하니까 오히려 지역 언론과의 '유착' 혐의를 제기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지역민이 져야 할 책임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게 공정할 것 같다.

무슨 일이건 옆에서 팔짱 끼고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사람에게 "그럼 네가 직접 해봐"라고 대꾸하는 건 좋은 자세는 아닐망정 그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현 '서울공화국' 아니 '내부 식민지' 체제에선 지역 내의 어떤 문제는 사실상 우리 모두의 문제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제게 '미래 언론'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은 없다. 지역민들이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의 소중한 기회를 통해 후보들에게 기존 '내부 식민지' 체제를 깰 수 있는 의제를 요구한 적이 있었나. 지역과는 무관한 중앙의 정치적 의제에 휘둘려 정파 전쟁의 졸(卒)로만 기능한 게 우리들의 모습 아닌가.

이런 흐름이 지속되는 한 지역 내 어떤 분야에서건 장래는 어둡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점을 역설하는 글을 계속 쓸 생각이다.

강준만 교수의 저널룩 '인물과 사상' [촬영 : 김동철 기자]

-- 강 교수를 '진보 학자'라고 하는데 본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념적 구분 기준과 스펙트럼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형 계급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동산 문제의 처참한 실패로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세력이 다른 정치적 의제에서 진보를 내세운다 해도 그걸 어찌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존 '내부 식민지' 체제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을 진보라고 할 수 있나. 당파적 이익에 눈이 멀어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을 진보라고 할 수 있나.

이건 한 편의 논문을 써야 할 주제인지라, 독자들께서 제 글을 보시고 각자 알아서 판단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

-- 저서 '증오 상업주의'에서 우리 사회의 증오 현상을 비판했는데 요즘 더 극심해진 것 같다. 해결 방안은.

▲ '증오 상업주의'는 정치에 너무 많은 몫이 걸려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선거철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순수한 지지를 하는 거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 보면 전리품으로 공직을 차지해 잘 나가는 모습을 수없이 봤을 거다.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권력과 금력이 주어지는 봉사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정치는 전부는 아닐망정 상당 부분 밥그릇 싸움이다. 편을 갈라 밥그릇 싸움을 하는데, 밥그릇 때문에 싸운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반대편을 증오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을 만들어 싸우는 것이다.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면 천박한 표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 생각은 좀 다르다. 오히려 처음부터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국민 세금 무서운 줄을 알고, 위선·독선·오만과 반대편에 대한 과장된 비난과 증오를 줄일 수 있고, 정치 언어의 위선적 거품을 걷어내 실사구시 정치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간 우리 사회에 대부분 밥그릇 싸움에 불과한 정치 전쟁 없이 작동할 수 있는 중립지대를 넓혀 가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만, 그 어느 쪽도 자신들의 전리품 몫을 줄이고 싶지 않아 호응하질 않았다.

시민들이 요구해야 하는데, 시민들도 상당 부분 그런 증오의 대결 구도에 정치화돼 있어서 당분간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비관하는 건 아니다.

역사엔 거쳐야 할 과정이 있는가보다 정도로 생각하면서 오히려 낙관하는 쪽이다. 시간이 위대한 해결사일 때가 많다.

-- '기레기'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언론 종사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 최근 언론을 향해 쏟아지는 '기레기'라는 욕설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시 일부 언론이 저지른 오보와 왜곡 보도가 '기레기'라는 말을 낳게 했다지만, '기레기'를 대중화시킨 건 '정파성 전쟁'이었다. 자신의 정파성을 충족시켜주는 언론이 '기레기'에 가까운 짓을 할수록 '참언론'이라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종사자들이 어떤 덕목을 갖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 편 아니면 기레기라고 욕하는 걸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언론에 문제가 많다. 혈압이 오를 정도다.

그런데 그 문제는 최근 생긴 게 아니다. 디지털혁명이 악화시킨 면이 있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있었다. 기레기라는 단어의 용법이 타당하다면, 언론은 늘 기레기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잣대를 사회의 다른 분야에 적용하자면, 쓰레기 아닌 게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언론 스스로 그렇게 큰소리칠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이 앞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줄여나가기 위한 솔직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공적 기관을 자임하는 언론은 일반 기업과 비교해 이상적인 주장을 훨씬 더 많이 외쳐대는 바람에 언행 불일치로 인한 위선과 그에 대한 대중의 혐오에 있어 훨씬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언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미화해 가능하지 않은 이상을 외쳐댐으로써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사구시 차원에서 세속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속된 말로, 더 폼 잡지 말고 뭐든지 탁 깨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거다.

책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인물과사상사]

-- 최근 펴낸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을 비판했는데.

▲ 내로남불이 바람직한 덕목이 아니라면 비판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내로남불은 정치적 부족주의 현상이다. 다른 나라들에서 정치적 부족주의는 대부분 인종과 민족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한국에선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의 정치적 부족주의를 쉽고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정치적 이념이다. 겉으로 표방한 나름의 노선과 원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부족 또는 패거리의 이익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지만 반대편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가능해진다. 우리가 21세기에 원시 시대의 부족 정치를 해야 하겠는가.

-- 인물 비평이나 사회 비평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평온 등 아포리즘에 천착하는 이유는.

▲ 일반 원칙엔 동의하는 사람이라도 그 원칙이 자기 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면 그 원칙을 거부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예컨대, 내로남불을 원칙으로 지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내로남불이 우리 편에게 유리하다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이런 상황에선 무슨 말을 해도 말이 안 통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사고의 시공간적 폭을 넓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보자는 뜻에서 아포리즘의 매력에 끌리는 것이다.

-- 퇴임 이후 계획은.

▲ 달라질 건 없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열심히 책 읽고 글 쓰는 일이다. 이젠 그런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감사하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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