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채식 어때요?"..서울시 누리집에 948곳 채식식당 소개
[서울&] [자치소식] ‘국제채식연맹’ 분류 근거에 맞춰 선정
강남구>종로구>송파구 순 식당 많고
종류는 양식>한식>카페>인도·중동 순
시민 알기 쉽게 매장에 스티커 배포
국내 비건 소비자 2018년에 150만 명
채식주의자 아니어도 ‘건강식’에 관심
“채식은 식재료에 대한 넓은 관심 의미
시민 모두에게 음식 선택권 확대 의미”
“당뇨 등 건강상 이유로 ‘비건’으로 사는데, 외식하려면 갈 만한 곳이 없어요.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때 무조건 여기로 와요. 메뉴판에 ‘비건식’ 성분이 자세히 표기돼 있거든요.”
지난 1월28일 오후, 양천구 목동의 한 채식 전문 식당을 찾은 이성희(46)씨가 말했다.
한국채식협회에 따르면 국내 비건 소비자는 2008년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10배 늘었다. 2030세대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비건 라이프’ 인증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입영하는 채식주의자, 모슬렘(이슬람교도) 병사를 위해 ‘비건 식단’을 제공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시도 이런 사회 변화를 반영해 ‘채식식당 전수조사’에 나섰다. 채식주의자는 물론 건강한 채식 한 끼를 찾는 시민 모두의 먹거리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채식 메뉴를 취급하는 음식점을 발굴하기 위한 서울 소재 음식점(일반·휴게음식점) 전수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가 이번 전수조사에서 발굴한 채식식당은 총 948곳이다. 일반식당 368곳, 프랜차이즈 580곳으로, 채식 메뉴만 취급하는 채식 전용 음식점과 메뉴 중에 채식 메뉴가 있는 일반음식점을 모두 포함한다. 이는 ‘국제채식연맹’(IVU) 채식 분류를 근거로 식자재·조미료에 동물성 성분을 첨가했는지, 유제품을 사용하는지 등을 따져 찾아낸 총 1555개 채식 메뉴 취급 식당 가운데 정보 제공에 동의한 식당들이다.
국제채식연맹이 정한 채식 유형으로는 △동물성 식품은 먹지 않고 과일·채소 등 식물성 식품만을 먹는 순수 채식인 비건 △식물성 식품과 유제품(우유·치즈·버터 등)을 먹는 락토 △식물성 식품과 달걀을 먹는 오보 △식물성 식품과 유제품, 달걀을 먹는 락토오보 △식물성 식품과 유제품, 달걀,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가 있다.
조미료에 동물성 성분 첨가했는지도 챙겨
현재 서울 시내 채식 음식점은 대부분 도심 번화가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강남구에 110곳(11.6%)으로 가장 많았고, 종로구 70곳(7.4%), 송파구 68곳(7.2%), 마포구 57곳(6.0%), 용산구 54곳(5.7%), 서초구 52곳(5.5%), 중구 47곳(5.0%) 순이다.
업종별로는 양식 418곳(44.1%), 한식 322곳(34.0%), 카페 69곳(7.3%), 인도·중동 음식 38곳(4.0%), 베이커리 32곳(3.4%) 순이다. 인도·중동 음식은 아직 국내에선 낯선 메뉴지만 채식 메뉴가 보편적이고 식당을 고정적으로 운영해 네 번째로 많았다.
채식 유형별로는 비건 메뉴(3014개, 64.3%)가 가장 많고, 락토 메뉴(565개, 12.0%), 페스코 메뉴(464개, 9.9%), 오보 메뉴(188개, 4.0%) 순이다. 채식 메뉴에 대한 분석은 948개 업소에서 제공한 메뉴 중 가격 정보가 없거나 가격이 유동적(무게당 가격 책정 등)인 경우를 제외한 총 4691개 메뉴를 대상으로 했다.
채식식당이 강남구와 종로구에 몰려 있는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 수요 때문으로 보인다. 종합플랫폼 ‘채식한끼’를 운영하는 소셜벤처 비욘드넥스트는 2017년부터 한국 채식식당 정보를 사용자와 공유하고 이번 전수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상진(35) 비욘드넥스트 대표는 “강남구와 종로구 식당 사장님들을 만나 메뉴를 물어보면 상대적으로 ‘비건’에 대한 정보와 식자재를 상세히 알고 계신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주로 강남과 종로를 많이 찾는데, 이들 사이에 ‘채식 커뮤니티’가 있어 여행지 채식 전문 식당 정보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시장이 커지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으리라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시민들은 이번 전수조사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대학생 정성모(26)씨는 “넷플리스에서 ‘동물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채식에 입문했는데,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본인 역시 13년 차 ‘채식지향인’이라며 “채식한다는 건 건강, 환경, 동물 등 식재료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살겠다는 뜻이다. 내가 먹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넓혀가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여 설명하기도 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먹거리 관심 높아져
서울시가 이번에 발굴한 채식 음식점은 서울시 누리집(분야별 정보→복지→생활보건의료→식품안전→서울시 채식 음식점 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치구별, 업종별(한식·베이커리·카페 등 10개), 메뉴(채식 유형)별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서울시 누리집 외에 식품안전정보포털(FSI)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는 <서울시 채식식당 가이드북>도 제작해 각 자치구 보건소에 배부하는 등 오프라인에서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시민들이 채식식당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매장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를 제작해 948개 식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 채식 메뉴 취급 음식점 조사·발굴은 ‘채식하기 편한 서울 환경조성사업’(2020년 7~12월)의 하나로 이뤄졌다. 만성질환 예방과 균형 있는 식생활을 위한 채소 섭취량을 늘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채식을 선호하는 시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됐다.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또한 “이번에 조사·발굴한 채식식당 정보를 채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 등으로 지속해서 홍보해 건강한 채식 정보를 필요로 하는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시민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만성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을 위해 ‘채식하기 편한 서울’을 지속해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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