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신춘문예 출신 신은숙 시인 첫 시집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조정진 2021. 2. 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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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시는 마음으로 읽는 세상입니다. 그 안에 새소리 바람소리 깃들 수 있도록 마음을 유리알처럼 잘 닦아 놓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사랑하고 살피겠습니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단 하나 그것입니다."

이런 인상 깊은 당선소감을 남긴 신은숙(51) 시인이 첫 번째 시집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파란)를 펴냈다.

시기적으로 모란이 작약보다 앞서 피지만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 시인의 말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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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와 절멸 속 흔들리며 피는 작약 한 송이"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히말라야시다’로 등단한 신은숙 시인이 첫 시집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를 펴냈다.
“제게 시는 마음으로 읽는 세상입니다. 그 안에 새소리 바람소리 깃들 수 있도록 마음을 유리알처럼 잘 닦아 놓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사랑하고 살피겠습니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단 하나 그것입니다.”

이런 인상 깊은 당선소감을 남긴 신은숙(51) 시인이 첫 번째 시집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파란)를 펴냈다.

시집엔 맑고 곱게 빗어낸 서정시 57편이 담겨 있다.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히말라야시다’로 등단한 이후 7년 만이다. 히말라야시다는 시인이 다닌 양양초등학교 교내에 있는 노거수 이름이다.

“나는 작약일 수 있을까,// 문득 작약이 눈앞에서 환하게 피다니/ 거짓말 같이 환호작약하다니// 직박구리 한 마리 날아간 허공이 일파만파 물결 일 듯/ 브로치 같은 작약/ 아니 작약 닮은 앙다문 브로치 하나/ 작작 야곰야곰 피다니// 팔랑,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작약은 귀를 접는다/ 그리운 이름일랑 저 귓속에 넣으면/ 세상의 발자국도 점점 멀어져/ 나는 더 이상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 산사에 바람이 불어/ 어떤 바람도 남지 않듯”(‘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전문)

가고 오는 시간의 순환 속에서 세상의 발자국에 흔들리지 않는 작약이 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은 ‘작약을 심겠다’는 의지로 표명되기도 한다.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풀이지만 두 꽃은 생김새가 비슷해서 자주 혼동된다. 시기적으로 모란이 작약보다 앞서 피지만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 시인의 말을 들여다보자.
등단 7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낸 신은숙 시인은 지인들과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늦봄과 초여름은 다른 피부다/ 오월엔 모란, 유월엔 작약으로/ 모란이었던 엄마,/ 그 나무 그늘 흔들리며 피는 작약 한 포기/ 슬픔이 한 생을 복기하는 순간/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쓸쓸을/ 새삼 쓰다듬는다”(‘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은 모란이었던 엄마의 생을 ‘의기양양’이라 부르고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쓸쓸을 ‘장승리’ 라 부르면서 사라져가는 소중했던 것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모란’ 자수를 놓던 ‘한 번도 고향 떠난 적 없는’ 의기라는 이름의 엄마는 ‘의기양양’으로, ‘철 든 동네였지만 철없어진 지 오래’인 ‘장승리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고 썼다.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강원도 양양 장승리는 철광산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철을 가장 많이 생산하던 곳이었지만 1993년 폐광이 되었다. 한때의 번영은 폐허와 절멸의 기억으로 남았다.

시인은 광부였던 아버지의 기억을 또 다른 장소 ‘추전역’ 또는 ‘광차는 달린다’라는 시에서 소환하며 사라지고 없는 대상의 지극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신은숙 시인의 첫 시집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표지.
‘은하미장원’에서는 “눈 내린 사북 거리/ 미용사는 은하로 떠나고/ 눈 같은 신부가 안개꽃드레스 입고 웃고 있다”. 그 신부는 ‘한때 푸른 은하이고 싶었’던 시인 자신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시인의 존재론’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고독 때문에 시를 쓴다고 하더라도 이 깊고도 지속적인 긍정의 시 쓰기는 인간의 근원적 존재 형식에 대한 탐구 작업으로 끝없이 이어져 갈 것이다.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는 아득한 세월을 지나 고백과 긍정의 언어로 거듭나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고 있다. 신은숙이 들려준 존재론적 기원에 대한 사유, 상처와 사랑의 에너지를 통한 심원한 형상을 우리는 깊이 기억할 것이다.”

세계가 직면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대유행) 위기 속에서 ‘살아진다는 말은 사라진다는 말’이면서 ‘사라진다는 말은 살아진다는 말의 입버릇’(시 ‘사라짐에 대하여’)이라는 시인의 고백이 와 닿는다.

이어서 ‘견딘다는 말은 이유도 없이 태어난 이유’면서 ‘아직은 바라볼 별빛이 남아있다는 말’을 통해 무엇이 가고 무엇이 오더라도 지속적인 긍정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폐허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당부로도 들린다.

강원대학교 국문학과와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한 강원도 토박이 신 시인은 현재 치악산이 있는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며 오로지 시와 열애 중이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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