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의 공존의 지혜] 스마트팜을 통해 알게 된 노동의 즐거움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는 요즘 TV에서 다양한 집 구경 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것이 텃밭이다. 농사를 너무 해보고 싶어서 농작물 기르는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기도 했었고, 유학시절에는 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서 화분에 채소를 길러본 적도 있다. 물건 정리함이었던 플라스틱 통에 구멍을 뚫어 화분을 만들고 한인마트에서 깻잎과 상추, 파 씨앗을 사다가 심었다. 분무기로 수분을 주며 언제 싹이 올라오려나 기다리다 혹시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씨앗이 상해버린 것은 아닌가 마음 졸이던 어느 날, 처음으로 까만 흙 사이로 초록색 싹이 올라와 있는 것을 봤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어찌 보면 잡초 같기도 한 새싹을 두고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고 흥분했었다. 나는 겨우 물을 주었을 뿐인데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고 무성히 잎을 내는 것이 어찌나 신기했던지, 처음 해보는 농사(?)가 주는 즐거움은 박사논문 스트레스에 절여진 나를 소생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수확을 해서 친구들과 음식도 해먹으니 보람은 두배가 되었다.
농사로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치유농업(Agro-healing), 캐어팜(Care Farm)이라고 불리며 치매노인, 장애인, 비행청소년 등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젝트로 농업이 활용되고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급여를 받는 노동을 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재활, 교육, 돌봄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적 농업을 한 지 오래다.
직업으로서의 농사는 무척 고된 일이다. 수익이 될 만큼 농작물을 재배하는 일은 엄청난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치유 농업이나, 사회적 농업은 고용보다는 치유와 돌봄에 가깝다. 그런데 IoT기술과 AI기술이 더해진 스마트 팜 기술을 통해 농부의 오랜 경험과 고된 노동력이 없이도 장애인 농부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 온실에서는 외부 날씨와 상관없이, 심지어 태양 없이도 LED와 형광등을 이용해서 광합성을 조절하며, 농부가 지시하지 않아도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여 영양분을 공급하고 문을 열고, 에어컨이나 보일러를 켠다. 기술투입 대비 생산성이 잘 맞는 작물만 잘 고른다면 적은 면적의 땅에서 많은 작물을 생산해 흑자를 낼 수 있다. 스마트팜 농부는 겨울에도 배고프지 않은 배짱이가 될 수 있다. 국내의 한 비영리 기관이 직업 재활로서의 농업 경험과 사회복지사와 재활전문가와 함께 장애인 근로자의 개인적 특성을 감안해 직무를 배정하고 교육하고 조정하는 등의 휴먼서비스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와 해외의 스마트팜을 연구하고 모델링하여 푸르메 여주 스마트팜을 건립 중이다.
평균 고용률도 전체 인구의 반밖에 되지 않는 장애인은 상당수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한자리에 앉아 기계가 대신해도 충분한 조립이나 포장 등의 단순 업무를 한다. 동기부여도 보람도 성취감도 갖기 어려우며, 생산력이 떨어지니 보수는 최저 시급도 되지 않는다. 그저 낮에 어디 가있을 곳이 있으니 감지덕지해야하는 수준인 곳도 많다. 그러나 이제 스마트팜에서 장애인은 농작물을 키우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축적된 데이터와 기술로 생산성을 높여, 적절한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다운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소원도 이루어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손자를 위해 남긴 어느 할아버지의 여주의 4,000평 땅은 이제 300명의 발달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꿈꾸는 땅이 될 예정이다. 유리온실에서 딸기나 토마토를 기르며, 카페나 레스토랑, 지역주민의 체험장, 파머스 마켓 등의 부대시설에서 장애를 가진 청년 직원이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직무를 하며 일하는 즐거움과 돈을 버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사실은 장애인이 부모나 교사로부터 돌봄과 보호를 받는 객체가 아니라 자신이 작물을 가꾸고 열매를 생산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발자국이 정부의 여러 부처와 지자체, 지역사회와 유관 기관, 시민의 관심과 협조로 잘 떼어져서, 이제 장애인이 출퇴근이 가능한 도심의 근교 곳곳에 스마트팜들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제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도 자식보다 하루 더 살고 싶다는 처절한 꿈이 아닌 보통의 삶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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