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이수정] 수사절차의 적법성에 대한 시비
[프로파일러]
이수정ㅣ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공수처가 출범하였다.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환영의 뜻을 전한다. 어떠한 권력도 외부 견제 없이 자정의 노력만으로는 정도를 지키기 어렵다.
최근 법원은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몰려 억울하게 징역을 살고 나온 최아무개씨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여 당시 강압수사를 하였던 경찰관과 검사에게도 14억원에 가까운 배상액의 일부를 물어주라고 판시하였다.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1960년대 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은 인간은 누구나 복잡하고 많은 정보 중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는 거의 본능적인 행동으로서 피하기가 어려운데, 재판관들도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하물며 갈래를 잡을 수 없는 수사 초기 단계에는 확증편향에 배치되는 정보에 대해 무시하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
확증편향이 심화되는 요소들은 곳곳에 깔려 있는데, 그중에서도 판단자들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가장 위험하다.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인지적 용량은 제한되어 있어서 시간적 제약이나 사회적 압박이 있을 때 더욱 강력한 심리적 오류가 발생한다. 한편 이런 오류를 줄이도록 하는 요소들도 존재하는데, 차후 판단의 결과가 상대방에게 공개될 수도 있으며 제3자에 의해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주지시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편향과 오류에 함몰되지 않도록 한다고 알려진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감시나 감찰 가능성은 수사기관에도 상당한 브레이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공수처 역시 검찰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내리라 기대된다.
서로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건강한 견제기능을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의사결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인데, 최근 검찰을 향한 공격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정치적 이익이 밀접히 연관된 사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공정성을 지나치게 공격하다 보면 사법제도의 근간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최근 재판에 임하는 형사범들의 태도에서 이런 전조가 보이는 것 같다. 두 명의 여성을 연쇄 살해한 혐의로 최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최○○씨는 항소심에서 검찰이 수사 당시 자신에게 시키는 대로 진술하라고 했다면서 수사가 총체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씨는 지난해 4월 아내의 지인을 승용차에 태워 다리 밑으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최씨의 추가 살인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지인을 살해하고 4일 뒤 랜덤채팅으로 또 다른 여성을 유인하여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문제는 범행 동기에 대한 것인데, 최씨는 당시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강도와 성폭행이 목적인 살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피의자는 항소심에서 강력하게 부인을 하고 있는 것이며 검찰이 자신이 진술하지 않은 내용까지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최씨는 강도와 강간 혐의를 적용한 검찰이 부당한 수사절차를 적용하였기 때문에 자신에게 과도한 형이 내려졌다는 입장인 것이다.
억울해하는 최씨가 참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나 최근 강력범죄자들 중 이렇게 수사과정을 문제 삼거나 심신미약 등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거나 왜곡하려는 자들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사회 전반이 제기하는 검찰이나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연관이 없지 않다고 판단된다. ‘형사절차의 부당함’에 대한 공격은 형사범들이 참으로 단골로 사용하는 메뉴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코로나 속 ‘새롭게 발견한 즐거움’ 2위 동네 산책…1위는?
- [속보] 임성근 탄핵안 국회 통과…사상 첫 법관 탄핵소추
- 류호정 ‘비서 면직’ 논란에 정면 대응, 법적 고소·당기위 제소키로
- 지인 폭행해 IQ 55 만든 전 야구선수 징역 1년6월 선고
- 광주TCS·안디옥교회 집단감염 첫 고리는 서울 학부모
- 문 대통령-바이든 통화에 등장한 프란치스코 교황…왜?
- 야당 원안위원 “북 원전 검토가 ‘이적행위’?…한심하다”
- 공급대책 공공임대 비율 30% 미만…“무주택 세입자에 불충분”
- 정부 “3~4월 코로나 4차 유행 가능성 배제 못해”
- 캠핑 모닥불 피우는 그 이유를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