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 300번 넘게 언급된 주택 공급대책.. "새 주택보단 갈등 늘까 우려"

연지연 기자 2021. 2. 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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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4일 발표한 2·4 주택 공급대책엔 주택 공급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충분히 반영됐다. 하지만 여기에 공공성을 가미해야 하고 기존 토지주의 수익에 상한을 두겠다는 의지도 반영했다. 대책에서 ‘공공’이 들어간 단어는 무려 380번, 공급이 들어간 단어는 130번 들어갔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이 대목에서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공공을 가미한 주택 공급이 생각보다 미미하고 정비사업지의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갈등이 커지면 오히려 사업 진척이 늦어진다는 점에서 공급 측면에선 악재다.

또 강남 재건축 사업지의 호응은 떨어지고 수도권 외곽 사업지에서만 주택 공급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론 오히려 주거 쾌적성을 이미 갖춘 기존 아파트나 신축 아파트 입주권 가격만 오를 수 있다.

◇ "주택 공급 말고 혼란·갈등·송사가 늘어난다"

이날 발표한 대책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은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의 큰 장애물 중 하나였던 조합원 동의율을 낮추겠다는 점이다.

‘2.4 주택공급대책’ 중 약 30만6000호를 담당할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주민 또는 토지주의 동의 요건을 3분의 2 이상(66%)으로 낮췄다. 기존 재개발과 재건축에서 4분의 3 이상(75%) 동의가 필요했던 것을 10%포인트(p) 가량 완화한 것이다. 약 13만6000가구의 공급을 담당할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더욱 파격적이다. 공기업이 주도하는 이 사업의 신청 요건은 ‘조합원 과반수’로 문턱을 대폭 낮췄다.

문제는 주민간 갈등이다. 일단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신청 요건은 낮췄지만, 실제 사업 시행을 위해서는 1년 내 토지 소유자의 3분의2 이상 찬성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 약 16% 가량의 동의를 단시간 내 더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기존 정비사업 상황을 빗대보면 불법 홍보요원 고용 등 갈등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들의 경우 ‘현금 청산’ 우려도 크다. 약 30%의 반대 목소리가 정부 또는 민간 개발사의 ‘강제 수용’으로 덮어질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정비사업장으로 지정되면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들의 경우 물건을 타인에게 양도하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실상 몰수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정비사업에 반대를 하지만 그에 걸맞는 출구나 퇴로가 실상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3기 신도시 토지를 보상할 때도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토지를 수용하는 부분에서 갈등이 생기고 있다"면서 "이런 갈등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에 옮겨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토지 소유자의 동의 비율을 낮춰도 속도가 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현행 기준대로 토지 소유자의 4분의 3을 동의 조건으로 정비사업을 시작해도 나머지 4분의 1의 반대 목소리가 크면 송사로 번지고 이렇게 되면 정비사업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조합원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가 소송을 제기하면 공공 주도 정비사업 역시 제동이 걸리기 마련"이라면서 "이런 법적 분쟁이 불거져고 사업을 멈추지 않고 강행한다는 등의 규정이 없으면 공공 주도 정비사업 역시 사업이 중단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지방에선 효과 있을수도"

토지주의 수익을 기존 정비계획 상 수익률보다 최대 30%p까지 추가로 준다는 점도 분란의 소지가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강남 핵심지 재개발 사업지와 서울 외곽 재개발 사업지의 입장이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강남 재건축 정비사업지는 고급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가치 극대화를 꾀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공공재건축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가 늘어난 용적률에 임대주택을 절반 넣으라고 했던 것"이라면서 "그럴 바엔 차라리 1:1 재건축을 하는 편이 주택 가치에 좋을 수 있다는 조합원 목소리가 대다수였다"고 했다.

방배동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추가 수익 보장 10~30%p에 만족하지 않는 조합원이 나올 수 있고, 공공성을 가미하는 것보다 민간 정비사업을 고수하는 편이 주택 자산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조합원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투입돼야 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조합원 비중이 많은 외곽이나 지방 광역시에선 의외로 속도가 나면서 주택 공급에 긍정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전세금 반환부담 있는 집주인, 월세수입의존 고령자 등으로 구성된 조합이 대표적이다.

신탁업계 한 관계자는 "지방 재개발 사업에 나서보면 새 집엔 살고 싶지만 돈이 없어 사업을 진행하기 싫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부분을 공공이 관여한다고 하면 사업을 쉽게 풀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했다.

◇ "신축·준신축·입주권 몸값 뛰고 빌라 몸값 주춤해질 것"

2·4 대책이 나온 이후 시장 관계자들은 단기적으로 신축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 입주권의 몸값이 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당장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는 신호보다는 앞으로 주택을 지을 토지를 확보하고 공공성을 가미해 주택을 짓겠다는 의지가 더 많이 엿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인천 연수구 송도 신도시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 송도 신도시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권은 이날 발표 직후 호가가 5000만원이 올랐다. 이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이번 대책엔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주택을 세울 지에 대한 언급이 없고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 공공성을 가미한다는 의견만 있다"면서 "새 아파트에 대한 열망이 커진다고 생각해 매도자들이 호가를 올린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과천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곳이 이미 신축으로 바뀐 동네라서 다행"이라면서 "지식정보타운이나 과천지구에 대규모 주택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이미 주거쾌적성을 확보한 신축 아파트 값은 더 오를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반면 한동안 실수요와 투자수요가 함께 쏠리면서 몸값이 크기 올랐던 빌라 투자는 한 풀 꺾일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 성북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비지역으로 꼽히거나 가격 추이에 이상신호가 잡히면 구역을 해제할 수도 있고, 정비지역 지정 이후 차익을 볼 수 없게 현금청산 규제가 걸렸다"면서 "개발이 되건 안 되건 빌라에서 실거주하겠다는 수요 말고 다른 투자수요가 들어오긴 불확실성이 크다"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도 "공공재개발을 염두에 둔 빌라 투자는 위험하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왔는데 이제 그 불확성이 더 커진 만큼, 빌라 상승세가 주춤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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