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거지가 아냐" 빌딩숲 뒤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
서울역 11번 출구와 닿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용산구에 위치한 동자동은 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줄곧 빈곤의 대명사였던 동네. 현재도 70동의 건물, 1,328개의 쪽방에 약 1,160명이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그 앞으로 우뚝 치솟은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동자동의 열악한 삶은 우리 시야에서 자주 가려지곤 한다. 어쩌면 ‘안심’도 무관심의 주된 이유였을지 모른다. 빈곤은 국가의 복지 ‘제도’로 어느 정도 구제되고, 기업과 사회, 자원봉사자들의 ‘선의’도 전보다 많아진 만큼 상황은 나아지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말이다.
하지만 정작 동자동 사람들은 각종 제도와 선의가 버무려진 돌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하고 있다. 책은 그 단절과 괴리의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 동자동 사람들의 목소리를 좇는다. 석사 논문 연구를 위해 2019년 5월부터 9개월간 동자동을 찾은 저자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무연고자 공영 장례 △무료 물품지원 활동 △저렴쪽방 사업 등 쪽방촌에 개입된 돌봄 서사를 통해 동자동의 ‘지금, 여기의 모습’을 들려준다.
정신지체 장애인이자, 기초수급자이며 아들 하나를 둔 이혼녀 정영희(45)씨는 동자동에 ‘리턴’한 경우다. 스물 살 무렵부터 서울역 주변을 전전하던 그가 동자동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18년 6월. 쪽방촌 주민들 사이에서도 그의 처지는 비교적 나은 편에 속한다. 임금 노동이 불가능한 그에게 국가는 매달 51만 2,000원(2019년 기준) 생계급여를 준다.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챙겨주는 큰 언니 등 가족의 울타리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돌봄엔 ‘정영희’란 주체는 결여됐다. 국가가 손에 쥐어주는 돈은 부족하며, (사실 정영희에겐 경제적 지원과 함께 일상적 돌봄까지 필요하다) 큰 언니는 “사람답게” 살길 바란다면서 병원이나 시설 생활을 종용할 뿐이다. 간섭과 통제에는 애정이 뒤따르지만, 정영희의 욕망과 생각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결국 정영희가 가장 의지하는 돌봄의 주체는 쪽방촌에서 만난 동거남이다. 관리비 명목으로 수급비를 거의 강탈당하는 것도 모자라 그 때문에 휴대폰 명의 도용 범죄에 휘말려 600만원의 미납금이 쌓여 있지만 정영희는 동거남을 떠나지 못한다. 서울시 주거지원사업에 당첨돼 강북구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를 해놓고도 그가 머무는 곳은 다시 동자동이다. 전 남편의 폭력, 쪽방촌에 도사린 성희롱의 위협,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동거남과의 연을 끊지 못하는 배경일 테다. 문제는 국가와 가족 대신 그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돌봄이 정영희의 삶을 또 다시 갉아먹고 있다는 거다. “돌봄이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역설”이다.
일방적인 선의와 환대도 쪽방촌 주민들에겐 인격의 손상과 박탈을 가져오는 경험일 수 있다. 쪽방촌에서 가장 익숙한 풍경은 ‘줄서기’다. 정부와 기업에서 답지하는 생필품, 식사를 제공받기 위해 새꿈어린이공원 앞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자동 안에 위치한 G교회가 한 달에 한번씩 운영하는 ‘사랑의 짜장면 나눔 행사’는 주민들을 직접 찾아간다. 하지만 박현욱(60)씨는 짜장면을 거절한다.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대신 그는 밥값 1,000원을 내고 사랑방 식도락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되돌려줬다. 고생하는 자원봉사자, 평소 신세를 진 주민들에게도 한 턱을 내며 고마움을 표할 수 있다. 반면 공짜 짜장면은 봉사자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봉사자와 주민 사이의 연결을 만들지 못하고, 더 분리시킨다. ‘우리’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완전히 타자화시키려는 선 긋기와 배제만 남는 것이다.
두 사람 말고도 책에는 형제처럼 지냈던 이웃의 장례를 무연고자 장례가 아닌 일반 장례로 치르느라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진 한 주민의 이야기, 쪽방촌 건물 철거에 맞서 정치적 연대에 나선 주민들이 노후한 환경에 어찌하지 못해 무력해졌던 사례도 그려진다.
동자동 쪽방촌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와 개입들은 쪽방촌 주민들의 위치와 존재방식, 인격과 자존감, 필요와 욕망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취약한 연결”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경험하는 삶은 ‘사회적 버려짐’과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책은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구원적 미래를 섣불리 제시해온 게 실패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란 점에서다. ‘지금, 여기’ 동자동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에 눈을 마주치는 일부터가 시작이 돼야 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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