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녹취록 공개에 판 커진 '탄핵 정국'..與野, 극한대치
사퇴 압박 속 '대법원장 탄핵 추진' 목소리도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헌정사 초유의 법관 탄핵을 두고 여야가 또 다시 극한 대치를 벌이게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는 과정에서 여권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다. 야당은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한 여당에 대한 공세를 한층 강화하는 모양새다. 사법부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도 거짓말을 한 김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4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일제히 김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이 정권의 판사 길들이기에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사표 수리를 거부하면서 후배를 탄핵의 골로 떠미는 모습까지 보였다"며 "비굴하게 연명하지 말고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김 대법원장 탄핵 추진을 고심 중이라며 "해도 너무 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본인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되돌아보고 거취를 결정하기를 바란다"고 압박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김 대법원장을 가리켜 "법관들의 리더로서 자격을 상실했다. 본인이 탄핵돼야 할 당사자가 된 것"이라며 "법관으로서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즉시 본인의 거취를 정해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김 대법원장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야당 의원들도 탄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위원장이었던 권성동 의원은 언론과의 통화에서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행위로 사법부 독립을 훼손시켰다. 이 정도면 탄핵안을 발의해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출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법부 수장이 후배 판사를 국회 탄핵 제물로 내몬 사실 하나만 해도 명백히 탄핵감"이라며 "희대의 권법 유착"이라고 비판했다. 판사 출신인 전주혜 의원도 "김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 탄핵감"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정치 상황을 살피는 대법원장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녹취록 파장이 커지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거론돼 오던 '김명수 탄핵카드'도 더욱 힘을 받게 됐다.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 탄핵소추안 발의를 물밑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내 반발 여론도 있어 실제 김 대법원장 탄핵 발의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임 부장판사 탄핵안을 처리하려는데 대한 정치적 맞불 성격으로 비치는 점도 경계하는 분위기다. 원내 정족수 부족으로 탄핵안 가결이 불가능한 현실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김 대법원장의 처신을 지적하며 "여당의 탄핵 추진을 염두에 두고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후배의 목을 권력에 뇌물로 바친 것"이라며 "사법부 스스로가 권력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편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이날 임 부장판사가 지난해 5월 사의를 표명하면서 김 대법원장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당시 "지금 상황을 잘 보고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또 "탄핵이라는 제도 있지,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일단은 정치적인 그런 것은 또 상황은 다른 문제니까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대법원장의 녹취록 공개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이날 오후 처리할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헌법을 위반한 임 판사에 대한 탄핵 표결로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책임을 다하겠다"며 "재적 과반이 넘는 국회의원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이유는 임 판사가 헌법에 규정된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성근 판사의 1심 판결문에는 6차례 걸쳐 위헌임이 적시돼 있다"면서 "그럼에도 법원은 징계 시효의 경과를 이유로 임 판사를 징계하지 못했다. 이에 국회가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내부대표인 김용민 의원은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관을 탄핵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도 사법농단 판사에 대한 역사적인 탄핵안 가결에 동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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