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치매 노인들 내쫓나" 강남 행복요양병원에 무슨 일이
환자 보호자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안 알려주고 나가라고만 한다"
"아버지, 어머니 몸도 제대로 못가누시는데..낯선 곳 가는 것 자체가 충격"
“치매에 반신불수인 80대 노인을 갑자기 엄동설한에 낯선 병원으로 보내겠다니... 이건 그냥 죽으라는 얘기잖아요.”
5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서울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에서 입원 중인 A(59)씨는 3일 본지와 통화에서 “명절까지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대소변도 못 가리는 아버지를 혼자 힘으로 보살피는게 벅차 몇 달 수소문 끝에 찾은 병원”이라며 “오는 15일 전까지 병원을 떠나달라는 통보를 받은 게 바로 지난 2일”이라고 허탈해 했다.
서울시는 지난 1일 이 병원을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하고, 15일부터는 코로나 감염 환자만 입원시키도록 준비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은 작년 말 요양병원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잇따르자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요양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환자들만 모아 치료하고 돌보겠다는 취지였다.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도 당시 지정된 전국 11곳 중 하나다.
이번 조치로 A씨 아버지를 포함해 이 병원 환자 262명은 설을 앞두고 다급하게 다른 병실을 알아봐야 할 처지가 됐다. 환자 평균 연령은 79.8세. 60% 이상이 치매 환자이다. 대부분 2년 안팎 장기 입원한 환자들로, 기저 질환이 있는 이들이 태반이다. B(61)씨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하루만 다른 간병인이 와도 불안해한다”며 “이삿짐 포장 이사하듯 병원 옮기라는 얘기를 쉽게 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보호자 C씨는 “어디에 있는 어떤 병원으로 옮길 지 확실한 대안을 만든 뒤 병원을 옮겨달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우선 나가라고 통보부터 하는 게 정상적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병원 환자 보호자 200여명은 모임을 꾸리고 서울시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4일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도 연다. 모임 대표인 현모씨는 “최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는데, ‘실제 인권 침해가 일어나야 개입할 수 있다’고 하더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져야 움직이겠다는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 강남구, 총리실, 국민권익위원회 등에도 진정을 넣었는데, 그나마 회신을 받은 곳은 인권위 밖에 없었다”고 씁쓸해 했다.
행복요양병원 관계자도 “환자 중 90% 가량이 고령에 기저질환 등이 있어 혼자서는 거동하기도 힘든 상태인데,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는 것은 건강에 커다란 충격을 줄 수밖에 없어 서울시를 최대한 설득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평균 2년 정도 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이라 의사, 간호사, 간병인이 환자의 세밀한 상황에 맞춰 처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을 옮길 경우 환자들은 달라진 환경에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취지다. 이런 점 등을 감안해 병원 측은 서울시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행정조치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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