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블루를 찾아가는 신비한 모험

조성관 작가 2021. 2. 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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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파랑)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그 색(色)의 이름을 신문 스포츠면 기사에서 발견하게 될 줄이야. 2021시즌 프로야구 유망주를 다룬 인터뷰 기사였다. '키움 9억 베팅, 160㎞에 도전…신인 최대어 키움 투수 장재영'. 제목에 끌려 기사를 읽다가 그만 턱 하고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었던 키움의 버건디색을 입으니 감회가 새롭다."

장재영은 키움 히어로즈 감독을 지낸 장정석 KBSN 해설위원의 아들이다.

그랬구나. 키움의 유니폼 색깔이 버건디였구나. 버건디색을 알고 있었지만 키움의 유니폼이 버건디라는 사실과는 연결하지 못했다.

버건디(burgundy)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주, 또는 그 포도주의 빛깔과 같은 자주색. 암적색, 진홍색. 레드 와인을 와인 잔에 따라 햇빛에 비쳐 보면 버건디 레드의 입자들이 황홀하고 신비롭게 느껴진다. 와인은 신이 만든 술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내가 최근에 버건디 컬러를 접한 것은 삼성전자의 에어드레서 TV 광고에서였다. 버건디 레드(red)를 입힌 제품은 거실을 중후하고 고급스런 분위기로 만들었다. 버건디 레드와 비슷한 레드로는 마룬, 코르도반, 옥스블러드가 있지만 버건디 레드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16세기의 성모 마리아 그림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Red'에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는 걸 처음 안 것은 스무살 언저리였다. 그 첫 번째 레드가 크림슨 레드(crimson red)였다. 선홍빛 빨강. 매우 진한 빨강이다. 고려대학교 상징색이 크림슨 레드다.

레드는 열정과 사랑과 권력을 은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금지, 퇴장 같은 부정적 의미도 함축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레드카드'는 선수와 팀에게 치명적이다.

인류는 오랜 세월 빨강, 하양, 검정 3색체계 속에 살아왔다. 고대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한 색은 붉은색이었다. 유럽인은 수천년 동안 청색을 경원시했다. 미개한 색으로 간주했다. 녹색과 함께 악마의 색으로 채색하기도 했다.

청색 안료를 가장 먼저 개발해 사용한 것은 고대 이집트다. 이집트 블루(Egyptian blue). 고대 이집트에서 개발된 최초의 합성 안료. 청색은 악의 기운을 몰아내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색으로 인식되어 주로 장례 의식에 많이 사용됐다. 미라 관두껑 같은 곳에 청색이 등장했다.

로마제국이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이집트 블루는 로마에 '세룰리엄'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청색은 여전히 천시되어 바탕색 같은 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로마제국 붕괴 후 이집트 블루는 합성 방법을 망실해 오랜 세월 생산될 수 없었다.

이집트 블루 다음으로 주목할 청색은 비잔틴 블루(Bizantine blue). 이스탄불의 하기야 소피야 성당 내부에 칠해진 청색을 칭한다. 이스탄불이 기독교 제국인 동로마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이던 콘스탄티노플 시기에 성당의 내부 인테리어에 사용된 청색이다.

생드니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 사진출처 = 블루, 색의 역사

그 청색이 어느 순간 성모 마리아의 상복(喪服)으로 데뷔한다. 이때부터 청색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 열기가 확산하면서 청색은 마침내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한 귀퉁이에 등장한다. 청색이 처음으로 긍정적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이어서 청색이 파리 생드니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메인을 차지하면서 마침내 성스러운 색깔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여기서 '생드니 청색;이라는 용어가 탄생한다. 청색은 성모 마리아의 색에서 프랑스왕의 옷으로, 다시 영국 왕의 옷에 등장한다.

색을 인식한다는 것은 문화적인 습성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서양에서는 오랜 세월 하늘과 물색을 청색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당연히 청색을 표현하는 어휘도 없었다. 17세기에 이르러 청색이 물색으로 자리 잡았다.

천신만고 끝에 빨강과 경쟁을 벌이는 위치에 오른 파랑! 하지만 파랑은 종교개혁의 태풍 앞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다. 신교도들은 가톨릭의 색깔(빨강)을 버리고 검정을 고결하고 성스럽고 존엄한 색깔로 인식했다. 성직자들은 모조리 검정색 옷을 입었고, 신교의 영향권에 있는 왕국의 군주들은 대부분 검은색 옷을 입었다.

청색에 대한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을 한꺼번에 뒤바꾼 게 프로이센 블루다. 1706년 베를린의 페인트 제조공이 우연히 청색 합성 안료(顔料)를 개발했다. 지구상 어디에도 없던 청색! 당시 베를린은 한창 세력이 커지던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 1709년부터 이 청색 안료가 거래되면서 프로이센 블루 혹은 '베를린 블루'라고 명명했다.(여기서는 편의상 영어명인 '프러시안 블루'라 부른다.)

프러시안 블루는 시중에 나오자마자 그동안 고가에 거래되던 청금석 가루로 제조된 안료를 단숨에 대체했다. 프러시안 블루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에서 다시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 프러시안 블루는 시간이 흘러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만들기 쉽고 값이 싸고 무해하고 착색이 잘 된다는 점으로 인해 염료, 잉크, 유화물감, 수채화 물감 등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었다.

쓰러진 베르테르 / 사진출처 = 블루, 색의 역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게 1774년이다. 이 소설이 유럽 전역에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주인공의 권총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현상'이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베르테르 현상’에 대해서는 수없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베르테르 현상이 확산되는 데 청색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경시된다.

괴테는 주인공 베르테르에게 청색 연미복 코트를 입혔고, 그 안에 노란색 조끼를 받쳐 입게 했다. 그 청색은 말할 것도 없이 프러시안 블루였다. 청년들은 앞다투어 베르테르처럼 청색 코트를 입고 거리를 누볐다. 이로써 청색은 전 유럽에 낭만주의 컬러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했다. 훗날 ‘색채론’을 쓰게 되는 괴테는 색으로 신분을 구분한 최초의 작가다.

프랑스의 국기는 삼색기다. 1789년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자유·평등·형제애의 이념을 삼색기로 구현했다. 자유=파랑, 평등=하양, 형제애=빨강. 청색이 검정을 밀어내고 당당하게 삼색의 하나로 올라선 것이다.

프랑스에서 프러시안 블루를 사용한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가 거론된다. 그의 작품 '기아우르와 하산의 전투'(1826년)를 보면 이국적인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체적으로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살짝 비치는 청색이 먹장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눈이 부시다.

유럽을 휩쓴 프러시안 블루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인에 의해 일본에 상륙한다. 이 안료는 나카사키를 통해 에도(江戶)에 전해졌다. 에도시대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는 목판화에 프러시안 블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다.

유럽산 청색 안료를 사용한 대표적인 그림이 '카나가와의 큰파도'(1833)이다. 이전까지 내구성이 강한 청색 안료를 갖지 못했던 일본 화가들은 프러시안 블루를 접하고는 이 수입 안료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색깔이 변하지 않는 최초의 안정적인 청색 프러시안 블루에 열광했다. 프러시안 블루를 받아들이면서 우키요에 작품들은 이전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해졌다. 이 우키요에 작품들이 우연히 프랑스에 전해지면서 프랑스 미술계는 일대 충격에 빠진다. 인상파 탄생의 배경이다.

프러시안 블루를 사용한 호쿠사이의 대표작 '카나가와의 큰파도'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반고흐의 눈색은?

내가 '차이나 블루'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팝송을 통해서다. "스테리, 스테리 나잇~~~"으로 시작하는 돈 맥클린의 '빈센트'(Vincent). 이 노래의 네 번째 연에 '차이나 블루'가 등장한다.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별이 빛나는 밤, 환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인 꽃들)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blue

(보랏빛 실안개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들

연회청색으로 빛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눈)

돈 맥클린은 빈센트 반 고흐의 눈 색깔을 차이나 블루라고 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차이나 블루는 '중국 도자기에서 나타나는 검정빛이 도는 푸른색'이다. 영어사전에는 연회청색, 밝은 녹청색이라고 나온다. 백인 중에는 반 고흐처럼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를 그냥 '블루'라고 하지 않고 앞에 '차이나'를 붙였다.

왜 차이나 블루라 명명했을까.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중국 청자가 유럽에 수입되었다. 유럽의 일부 귀족 사회에서 중국 청자를 비롯한 병풍, 그림 등을 소비했다. 자포니즘과 함께 불어닥친 시누아즈리(chinoiserie) 현상이다. 그들은 중국 청잣빛이 파란색 눈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 눈 색깔을 차이나 블루라고 명명한 것이다.

우리말에서는 청자의 색깔을 비취색(翡翠色)이라고 한다. 비취는 치밀하고 짙은 푸른색의 윤기가 나는 보석 구슬을 뜻한다. 비취색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를 찾지 못해 차이나 블루라고 하지 않았을까.

21세기의 우리는 파랑의 시대를 살고 있다. 파랑이 빨강을 밀어내고 색의 제왕이 된 것은 불과 200여 년. 우리는 어느덧 청색에서 자유, 희망, 혁신, 창조, 변화와 같은 은유를 읽어낸다.

왜 스티브 잡스는 애플 아이폰을 소개하는 무대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을까. 왜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에서 블루진을 입었을까. 노인도 청바지를 입으면 젊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왜 그럴까.

블루칩, 블루오션, 블루투스, 블루보틀, 블루버드, 블루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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