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융위, FTSE 경고장 받았다.."공매도 금지 지속하면 선진국 지수서 제외"
공매도 규제, 글로벌 투자자 반발 공식화
3일 공매도 제한적 허용 발표 배경 꼽혀
글로벌 주가지수회사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그룹이 지난 3일 금융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공매도 금지 조치가 계속될 경우 한국을 FTSE 선진국 지수에서 제외하겠다는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공매도 규제에 대해 글로벌 금융투자업계가 반발하고 나선 셈이다. FTSE는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와 함께 글로벌 주가 지수의 양대 산맥이다.
3일 오후 금융위가 코스피200, 코스닥150 종목을 상대로 제한적으로 공매도를 허용하고 나선 주요 배경 중 하나는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의 경고가 있었던 셈이다. FTSE가 한국을 선진국 지수에서 제외할 경우 대규모 외국인 자금 이탈이 불가피하다.
◇ 정부 공매도 금지 연장 밝히자 FTSE "지수 퇴출 가능"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FTSE는 지난 3일 공매도 금지 방침이 유지될 경우 FTSE 선진국 지수에서 한국을 제외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금융위 자본시장과에 보냈다. FTSE는 지난 2008년부터 한국을 선진국 지수에 편입했다. 13년 만에 선진국 지수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한 관계자는 "FTSE가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기로 한 것은 1월 하순께부터"라며 "정부가 당초 3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유지되어온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에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FTSE는 MSCI와 함께 양대 글로벌 증시 지수 회사로 꼽힌다. FTSE 지수는 주로 유럽계 투자회사들이 사용한다. 한국은 지난 2009년 FTSE 선진국 지수에 편입됐다.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면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한국을 선진국 시장으로 간주하고, 투자 비중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ETF(상장지수펀드) 등 이른바 패시브펀드도 선진국 시장을 상대로 한 글로벌 ETF 자금이 한국 증시로 유입된다.
◇ MSCI 신흥국 지수 지위도 ‘흔들’
역으로 선진국 지수에서 제외될 경우, 그만큼 외국인 자금 이탈이 불가피하다. 이번 FTSE의 서한은 FTSE의 사업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의 경고장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FTSE와 MSCI 모두 공매도 허용을 선진국 시장의 지표로 본다. FTSE는 정부 규제와 관련해 21개 항목을 가지고 각국 증시를 선진국, 선진 신흥국, 신흥국, 프론티어로 분류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공매도 허용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원은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영구적으로 금지될 경우 선진국 지수에서 퇴출당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지수로 편입되지 않은 MSCI의 경우 정부의 공매도 금지로 선진국 지수 편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이 일찍부터 나왔다. 김동영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선진국 지수뿐만 아니라 신흥국 지수 유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번 조치는 사실상 공매도 금지"…싸늘한 시각
금융위는 5월 초부터 코스피200, 코스닥150 주가지수 구성 종목을 대상으로 공매도를 허용하겠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홍콩 증시와 비슷하게 공매도를 허용하는 종목을 지정하겠다는 포석이다.
금융위가 이렇게 공매도 제한적 허용 방침을 밝힌 데에는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는 데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공매도 금지 조치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의 증시 규제가 선진국 기준에 맞춰져 있는지 보여주는 잣대나 마찬가지"라며 "FTSE가 한국 증시를 선진국에서 뺄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 자체가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매수와 매도를 함께하는 롱-숏(long-short) 투자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공매도를 규제하면 증시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한국에 들어오면 매수만 하라는 건데,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제한적 허용에 대해 상당수 투자자가 ‘사실상의 금지 조치 연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홍콩과 한국의 상장 종목 수는 각각 2544개와 2268개로 큰 차이가 없는데, 공매도 허용 종목은 936개와 350개로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정도로 제한적으로 허용해주면 사실상 공매도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한 국내 헤지펀드 운용역은 "코스피200 종목을 허용하면 선물 차익거래나 하라는 이야기"라며 "사실상 가장 간단한 헤지펀드 투자 기법인 롱-숏 투자부터 규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운용역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차익거래 등 다른 투자 기법도 모두 막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명확한 기준 없이 시가총액만 가지고 공매도 허용 여부를 정하겠다는 조치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개인 투자자 보호를 내세웠다면 공매도 타격이 큰 종목이 무엇인지 선행 연구가 진행됐어야 한다"면서 "5월을 재개 시점으로 설정한 근거도 없어 결국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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