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에어버스 수사 문건에 담긴 대한항공의 민낯

송응철 기자 2021. 2. 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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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특별 세무조사 착수, 한진家 리베이트 의혹으로 향하나
프랑스 당국 수사 문건에 명시된 리베이트 1450만 달러 행방 주목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최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 국세청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탈세나 비자금 등 확실한 혐의가 포착된 기업에 대한 특별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요원들이었다. 한진그룹에 대한 이번 세무조사의 강도가 만만치 않으리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지난해 3월 제기된 에어버스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한 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에어버스로부터 받은 1450만 달러(174억원) 규모의 리베이트가 오너 일가로 흘러 들어갔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현재진행형인 한진가 남매의 경영권 분쟁 향방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버스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항공기 제조기업이다. 대한항공이 에어버스와 인연을 맺은 건 1974년, A300-B4 기종 6대를 구매하면서다. 이후 대한항공은 1985년 A300-600, 1996년 A330을 구매하는 등 에어버스와 꾸준히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는 A321NEO와 같은 차세대 기종을 최대 50대까지 도입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다.

(왼쪽부터)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 부사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에어버스 수사 과정서 대한항공 리베이트 밝혀져

양사 간 관계는 단순한 사업상 거래 관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 수사기관이나 부처의 공동 수사 결과, 대한항공이 에어버스로부터 항공기를 구입하는 대가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입수한 에어버스 수사 관련 문건에는 대한항공 리베이트 사건의 전말이 담겨 있다.

A4 용지로 24페이지에 달하는 이 문건에 따르면 에어버스에 대한 수사는 2016년 프랑스 금융검찰청(Parque National Financier)이 처음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7년부터는 영국 중대범죄수사청(U.K. Serious Fraud Office)이 수사에 합류해 공동수사팀을 구성했다. 공동수사팀은 이후 에어버스의 해외부패관행법과 국제무기거래규정 위반 혐의에 대해 별도의 조사를 진행해 온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및 국방부(Department of State)와도 증거 자료를 공유하는 등 공조수사를 했다.

공동수사팀은 에어버스가 거래한 1750개 중개상 중 수상한 거래가 의심되는 110개 중개상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에어버스가 세계 여러 국가 공무원과 항공사에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한항공도 그중 하나였다. 문건의 3장 91~100조에는 에어버스와 대한항공 간 부적절한 거래가 명확하게 명시됐다.

문건에 따르면 에어버스는 1996년부터 2000년 사이 대한항공과 3건의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대한항공이 에어버스로부터 1996년 A330 기종 4대, 1998년과 2000년 A330 기종 각각 3대 등 총 10대를 사들이는 거래였다. 공동수사팀은 에어버스 측이 거래의 대가로 대한항공 고위 임원에게 1500만 달러(약 180억원)의 리베이트를 약속한 사실을 확인했다.

2020년 1월 프랑스 금융검찰청과 에어버스가 공익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공익사업협정(CJIP) 문건에는 대한항공의 리베이트 혐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 차례에 걸쳐 거액 리베이트 전달

리베이트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전달됐다. 처음으로 뇌물이 지급된 건 2010년, 항공기 매매 중개상을 통해서였다. 리베이트 자금은 프랑스 소재의 에어버스 국제전략마케팅기구(SMO)에서 나왔다. SMO는 중개상의 자녀가 소유한 기업에 1000만 달러(약 120억원)를 입금했다. 투자 명목이었지만, 이 자금의 대부분은 리베이트 자금으로 활용됐다. 실제, 이 중 200만 달러(약 24억원)는 레바논에 개설된 은행계좌를 통해 대한항공 고위 임원에게 흘러갔다.

두 번째 뇌물은 2011년 또 다른 중개상을 통해 건네졌다. A320 기종 판매 캠페인 담당이던 이 중개상은 대한항공과 어떤 접점도 없던 인물이다. 순전히 리베이트 자금 세탁 및 전달을 위해 투입된 것이다. 에어버스는 그해 이 중개상이 보유한 법인과 허위 컨설팅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650만 달러(약 78억원)를 전달했다. 이 자금 대부분은 같은 해 9월 대한항공 고위 임원에게 전달된 것으로 공동조사팀 조사 결과 드러났다.

세 번째 리베이트는 2013년 기부 형태로 이뤄졌다. 문건에는 대한항공 고위 임원과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한국과 미국 교육기관의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이뤄졌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언급된 교육기관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다. 에어버스는 2013년 설립된 에어버스 기술연구소에 대한 투자 명목으로 이 학교에 600만 달러(약 72억원)를 기부했다.

이렇게 기부된 600만 달러는 USC와 에어버스, 대한항공, 인하대학교 인사가 참여하는 운영이사회를 통해 운영된다. 사실상 한진그룹에서 자금 운영에 대한 권한을 가진 셈이다. USC가 지원금 출처와 목적에 대해 인지했는지 여부는 조사 결과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프랑스 금융검찰청은 SMO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통해 USC에 지급된 기부금이 대한항공의 항공기 구입에 대한 리베이트 차원이라고 봤다.

에어버스는 지난해 1월 프랑스 금융검찰청과 공익 합의를 했다. 프랑스는 기업 범죄에 대해 고유의 징벌적 벌금 제도를 시행 중이다. 법원이 금융검찰청과 범죄를 저지른 기업 간 사법공익협정(CJIP)을 승인하면 소모적 재판 절차 대신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에어버스는 총 36억 유로의 벌금 중 58%에 해당하는 20억8000만 유로를 우선 지불하고 3년 동안 기소를 유예받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에어버스는 처벌을 피했지만, 사건에 연루된 국가들에서는 자체적 수사가 시작되는 등 2차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국내에서도 현재 이와 관련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 시민단체와 함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남매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다. 채 의원은 이들 남매가 리베이트 사건 당시 모두 대한항공 등기이사로 재직했던 만큼, 리베이트 수수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국내 검찰에서도 관련 사건 수사 중

리베이트 사건은 지난해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언급됐다. 조 전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로 구성된 '3자 연합'은 조 회장이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조 회장은 리베이트 약속이 이행된 시기에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 경영전략본부장 등 리베이트 관련 업무 전반에 개입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며 "2011년부터는 경영전략본부장의 직책으로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에 직접 참여한 만큼 거액의 리베이트 수수가 조 회장 몰래 이뤄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조 전 부사장은 "항공기 리베이트와 관련해 어떤 불법적 의사결정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 회장 측은 조 전 부사장에게 의혹의 화살을 돌렸다. 한진그룹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리베이트 합의 의혹 시기는 조 회장이 한진그룹에 입사하기 이전이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은 재직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조씨 남매가 서로에게 리베이트 사건에 가담했다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만큼, 국세청 조사에서 진상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그 결과에 따라 현재진행형인 한진가 남매간 경영권 분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경영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 결과에 재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련의 논란에 대해 한진그룹 측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현재 어떤 내용으로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태여서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합의서가 프랑스 수사기관과 에어버스간 협상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객관적인 증거에 따른 사실 관계 확인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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