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권도 금지한 '중간착취', 관행으로 자리잡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로비 농성 및 선전전이 3일로 50일을 맞았다. 이들의 싸움은 한국사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낭떠러지 위에 선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프레시안>은 두 편의 기사에 걸쳐 한국사회 간접고용 문제를 다룬다. 첫편에서는 LG트윈타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살폈다. 둘째편에서는 한국사회에 간접고용 노동자가 확산된 과정과 이를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다뤘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눈물 上] 노조 만들고 부당한 일에 목소리 내니 돌아온 건 대량해고)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최저임금과 관리자의 갑질을 감내하며 길게는 10년을 일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바꿔보고자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니 용역업체와의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가 돌아왔다.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기업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를 언제든 자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그런 고용불안을 가속화하는 장치가 간접고용이다. 노동자에게는 재앙이고 기업에게는 선물인 셈이다.
이러한 간접고용은 애초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고용구조가 아니었다.
권위주의 정권도 금지했던 '중간착취' 허용한 외환위기 당시 파견법 제정
기업이 타인에게 고용된 노동자에게서 노무를 제공받는 것으로 정의되는 간접고용은 크게 둘로 나뉜다. '용역(하도급, 위탁 등으로도 표현)'과 '파견'이다.
둘은 원청 사용자의 업무지시 여부를 중심으로 구분된다. 용역은 기업이 타인에게 업무의 일부를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따라서 원청 사용자의 용역 노동자에 대한 업무 지시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파견은 기업이 타인에게 업무를 맡기지 않고 사람만 제공받는 것이다. 원청 사용자는 파견 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간접고용의 확산은 이 중 파견 고용을 1998년 외환위기 때 합법화한 뒤 본격화됐다.
외환위기 전까지 파견 고용을 규율하는 별도의 법은 없었다. 이 시기의 법은 오히려 파견 고용을 금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1961년 제정된 직업안정법 9조(유료 직업소개사업의 금지)의 "누구든지 유료의 직업소개사업을 행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이를 보여준다. 일자리를 미끼로 돈을 챙기는 '중간착취'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8년 7월 국회는 IMF가 금융지원 조건으로 내건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이유로 '파견근로자의 보호 등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주 내용은 청소, 주차장 관리, 조리, 경비, 수금 등 26개 업종의 파견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파견 고용 기간을 2년 이내로 제한하고, 불법파견이 적발될 경우 원청에 고용의무를 부여하는 조항도 있었다.
파견법 시행 한 달여 뒤 한국사회 간접고용 확산의 신호탄이 된 상징적 사건이 일어났다. 1998년 8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구내식당노동자들의 해고다. 당시 정규직노조는 현대차의 정리해고 시도에 맞서 36일 파업을 벌인 뒤 '277명 정리해고안'에 동의했다. 여기에는 구내식당 노동자와 133명 전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이 같은 결정에 항의하며 다섯 달 동안 단식과 삭발, 알몸 시위까지 벌였지만 노사 결정을 되돌리지 못했다. 이후 현대차 공장 구내식당은 외주화됐다. 현재 현대차공장의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 소속이다.
정년퇴직한 직접고용 노동자의 일자리를 간접고용 노동자로 채운 경우도 있었다. 일례로, 성공회대에는 2016년까지도 직접고용 청소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이 모두 퇴직한 지금 성공회대의 청소 일자리는 모두 용역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파견법 시행 이후 이 같은 일은 한국사회 전반에서 일어났다. 경총, 전경련 등 사용자 단체는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의 활용을 통한 '수량적 유연성 확보', 즉 '노동자 해고 요건의 실질적 완화'를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홍보하며 이 같은 흐름을 부추겼다.
외환위기는 3년만에 지나갔지만...당연한 고용관행 돼버린 간접고용
그 결과 간접고용은 일부 업종에서 점점 당연한 고용관행이 되어갔다. 파견 고용은 2010년경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별도의 노동법적 규제가 없는 용역 고용도 빠르게 증가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2001년 45만여 명(임금 노동자의 3.4%)이던 파견, 용역 노동자 수는 2017년 87만여 명(4.4%)까지 늘었다.
통계청 조사는 간접고용 노동자 확산 추세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규모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연구자들은 '통계청 조사에서 간접고용 노동자 수가 과소집계되어 있다'고 본다. 통계청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따로 조사하지 않는다. 조사가 설문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파견, 용역 노동자가 파견회사, 용역회사의 정규직 혹은 계약직이라고 응답하는 경우도 있다.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 분야 노동자들이 기간제 노동자로만 분류되기도 한다.
과소집계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최소 6명 중 1명의 임금 노동자는 간접고용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간고 노동자 실태조사)>에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수가 347만여 명으로 추정되어 있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17.5%에 달하는 비율이다.
고용형태 공시제를 바탕으로 매년 300인 이상 기업의 간접고용 노동자 수를 발표하고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도 2020년 300인 이상 기업 간접고용 노동자를 91만 명(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의 18.3%)으로 집계했다. 300인 이상 기업이 자체 보고한 간접고용 노동자 수만도 통계청이 집계한 파견, 용역 노동자 수를 넘는다.
특히 간접고용이 만연한 산업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포함되는 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이다.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파견 노동자의 43% 가량, 전체 용역 노동자의 87% 가량이 이 업종에서 일한다.
해당 산업은 대표적인 고령 직종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른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연령별 비율은 2020년 기준 60대 31.4%(27만 6000명), 50대 25.8%(22만 7000명) 순으로 나타난다.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도 인간다운 삶 가능하게 하려면
파견법 제정 이후 간접고용 확산 흐름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현대차, GM대우 등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소송 및 직접고용 요구 투쟁이 대표적이다.
가장 최근의 정책적 시도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다. 2020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파견, 용역 노동자의 수는 72만여 명(3.5%)으로 다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민간 영역으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았다. 해당 기간 감소한 파견, 용역 노동자의 수는 15만여 명이다. 공공부문에서 직접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의 수는 13만 7000여 명과 거의 일치한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안의 하나로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서 자회사 고용을 포함시켜 간접고용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와 메시지를 보이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노동계에서는 직접고용 확산 노력은 물론 △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법률 제정 △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을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가 겪는 극심한 고용불안이나 노조할 권리에서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중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은 ILO 기본협약 비준과 연계된 사안으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를 위한 법 개정을 권고한 바도 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실제 간접고용 노동자는 용역 노동자로 계약하고 일하더라도 상당수가 원청의 지휘 명령을 받는 파견 형태로 일한다"며 "간접고용 남용을 방지하려면 고용노동부 훈령 형태로만 되어 있는 '근로자 파견 판단 지침'을 법제화해 용역 분야에 만연한 파견 고용을 잡아내고 이들에 대해서도 고용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남 위원은 "그래도 남는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고용과 노동3권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며 "한국노총과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 노동조건, 단체협약 승계 등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이런 입법 논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서는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를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하지는 않고 있는데 강제할 필요가 있다"며 "법 개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관련해 조 위원은 "현행 법상 단체교섭 의무가 성립하지 않지만 현재 수준에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으로 원청과 간접고용 노동자 사이의 대화 채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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