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나요] 주춤하나 싶더니 또..윤창호법 비웃는 도로위 술꾼들
(서울=연합뉴스) "음주마약 역주행 사고로 참변을 당해 돌아가신 가장의 딸입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청원 글 작성자는 30대 운전자가 술과 마약에 취한 상태로 역주행, 택시 기사인 아빠의 생명을 하루아침에 앗아갔다며 엄중한 처벌을 호소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데요.
2018년 말 일명 제1윤창호법이 시행되면서 잠시 주춤한 듯싶었던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지난해 다시 증가하면서 2018년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차량 통행량이 줄어들었음에도 음주운전 사고 발생 건수는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큰데요.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죄를 일컫는 '제1윤창호법'은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일으킨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 수위를 높였습니다.
법정형은 상향 조정됐지만, 가해자에게 실제 부과되는 형량이 여전히 가볍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지난해 술에 취해 운전 중 전화를 하다 사망사고를 낸 것도 모자라 뺑소니까지 쳤던 사건은 고작 징역 4년 형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죠.
작년 4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음주운전 등으로 사망사고를 낸 위험운전치사죄의 양형 기준을 높여 최대 징역 12년을 권고했습니다.
이는 법관이 피고인의 형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의미하는데요.
새로운 양형 기준 역시 기본은 2∼5년이기 때문에, 중대한 가중사유가 없는 한 실제 판결은 이 범위 안에서 이뤄지게 됩니다.
주취 상태에서 차를 모는 것 자체가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 국민의 법 감정이지만 법원 판단은 아직 이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인데요.
대낮 음주운전으로 6세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해 징역 10년이 구형된 운전자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서울서부지법 판결이 대표적입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거의 매일 반성문을 제출한 사실 등을 그 이유로 들어 유족의 원망을 샀죠.
음주 사고를 내더라도 초범이거나 자동차 종합보험 가입, 진지한 반성 등을 했다면 형을 깎아줄 수 있어 '가해자를 위한 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이 같은 감경 사유가 가해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죄를 지었으면 반성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경 요소로 봐선 안 된다"며 "반성문을 내지 않거나 죄를 뉘우치지 않을 때만 가중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음주운전 사망 사고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간주해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술을 마시고 운전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운전대를 잡은 것인 만큼 고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경우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1급 살인 혐의를 적용하는 워싱턴주, 음주운전으로 3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해자에게 징역 50년 형을 선고한 플로리다주 등 철퇴를 가하는 주(州)가 많은데요.
상습범에겐 음주 측정을 해야만 차에 시동이 걸리는 음주운전 방지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도 꾸준히 제시되는 대안 중 하나입니다.
번호판 몰수, 신상정보 공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조은경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원은 "예외 규정을 통해 법의 테두리를 빠져나가는 사례가 속출, 이를 잡아내려는 노력도 커지고 있다"며 "법을 개정해 '음주와 관련된 모든 범죄는 예외 없이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는데요.
윤혜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본법은 놔두고 특별법만 손질하다 보니 중상해·사망사고는 처벌이 강화됐지만, 경상 등 중상해를 입히지 않은 음주운전 처벌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폐지하고, 형법과 윤창호법 등으로 음주운전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지선 기자 이주형 인턴기자 최지항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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