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쑥대밭 된 고용시장.. 고령자 중심 대책만 내놓은 정부

우상규 2021. 2.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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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일자리 감소 실태
경영난에 더 줄어든 신규채용
청년 91% "취업 더 어려워져"
취준생들 규모 축소될까 우려
전문가 "일자리 창출 규제 개선"
정부, 상반기 20조 투입 실효성 논란
실업급여 증가·고용보험 대상 확대
기금 고갈 우려에 보험요율 올릴 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고용시장은 쑥대밭이 됐다. 음식·숙박업 등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취업자가 급감했다. 정부가 고령자를 중심으로 한 단기 재정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60세 이상 일자리는 늘었지만 나머지 연령대는 모두 줄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채용을 꺼리면서 사회 초년생들의 취업문도 좁아졌다. 전문가들은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직업훈련이나 재교육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근본적으로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 개선 등에 신경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청년 10명 중 9명 “취업 힘들어져”… 고령층만 일자리 늘어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는 전년 대비 21만8000개 감소했다. 병이나 사고, 연가·휴가, 교육·훈련, 육아, 노사분규, 사업 부진·조업 중단 등의 사유로 일시적으로 휴직한 ‘일시휴직자’는 43만명이나 늘었지만 이들이 모두 취업자로 분류돼 그나마 전체 일자리 감소폭을 완화한 결과다. 업종별로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도소매(-16만명), 숙박·음식(-15만9000명), 교육서비스(-8만6000명) 등 대면 서비스업의 타격이 컸다. 연령대별로는 정부의 단기 재정 일자리 공급으로 60세 이상 취업자만 37만5000명 늘어났다. 반면 아르바이트 등을 시작하는 10대(15∼19세·-3만6000명),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는 20대(-14만6000명),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30대(-16만5000명) 등 나머지 모든 연령대에서 취업자가 감소했다.

청년 10명 중 9명은 “코로나19로 취업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청년위원회는 지난해 11∼12월 구직 중인 29세 이하 청년 596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 구직자 실태조사’ 결과를 지난 2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구직이 어려워졌다’는 응답은 전체의 91.7%에 달했다. 미래의 고용 상황에 대해서도 73.9%는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한산한 취업게시판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업들의 올해 상반기 채용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3일 서울 시내 한 대학의 취업게시판 주변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상윤 기자
◆대기업 공개채용 → 수시채용 전환… 청년들 “취업문 좁아져”

국내 주요 대기업이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속속 전환하는 것도 청년층에게는 취업문이 좁아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이미 2019년부터 대졸자 공채를 없앴고, LG그룹과 KT도 이후 수시채용으로 방식을 전환했다. 내년부터는 SK그룹이 100% 수시채용을 시작한다.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점은 수시채용에 따른 신규채용 규모 축소다. 수시채용은 ‘정기공채 ○○○명’ 식의 정확한 채용인원이 공개되지 않는다. 수시채용의 경우 채용 과정에서의 공정성이 과연 담보될 수 있느냐도 의심스럽다. 수시채용은 지원자가 한꺼번에 공개경쟁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서 지원자의 이른바 ‘백 그라운드’ 등의 부정적인 요인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각 기업은 매년 사업계획이나 인력 자연감소분 등을 고려해 새로 필요한 인력을 추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기공채나 수시채용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 방식이 변한다고 채용규모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기업이 일자리 만들도록 제도 개선해야”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단기 일자리 공급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지만 고용시장 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올해도 지난해처럼 대면 서비스 업종과 자영업자, 청년, 임시·일용직 등 고용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정부가 그 부분에 고용대책 등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도 고용을 늘리기 어렵고, 정부가 계속 월급을 줄 수는 없으니 단기 일자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자리 숫자를 유지한 것은 대부분 고령자의 단기 일자리인데 통계수치 개선에는 도움이 됐지만 고용시장 사정이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민간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재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아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창업도 생계형이 아닌 고부가가치형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기업이 새롭게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규제 완화도 중요하다”며 “이와 함께 업종·지역·산업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급격히 올린 최저임금 문제와 근로시간 단축 문제 등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부터 있었던 노동시장 충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시 일자리 편중 ‘고용 마중물’ 의문

고용노동부가 올해 상반기에 일자리 사업 예산 20조원을 투입하고, 1분기에만 취약계층 대상 일자리 83만개를 창출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용지표가 악화되자 내놓은 방안이지만 일자리의 질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공공부문 중심의 한시적 일자리여서 고용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업급여 지급액 증가와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 등으로 고용보험기금 고갈 우려가 커짐에 따라 고용보험료율 인상도 검토된다.

3일 고용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30조5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사업 예산 중 상반기에 20조원을 집행한다고 밝혔다. 104만2000명 규모의 직접일자리 사업도 빠르게 추진해 1분기 중 83만명(80%) 이상을 채용할 방침이다. 직접일자리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공공부문 한시적 일자리다.

코로나19로 충격적인 고용 성적표를 받은 고용부가 내린 특단의 대책이다. 지난해 12월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취업자는 2019년 12월보다 62만8000명이 줄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고용 충격을 예상했지만 송구스럽다”며 “올해 일자리 회복 모멘텀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백신 접종 등에 따라 코로나19가 하반기부터 잠잠해지면 국내외 경제도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상반기만 버티자’는 인식이 깔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일자리 지표가 악화되자 눈앞의 성과를 내기 위해 1분기 혹은 상반기에 예산을 집중하는 것”이라며 “착시현상으로 지표를 끌어 올릴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상반기 중 고용보험 재정 건전성 강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고용보험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낸 보험료 등으로 조성한 기금인데 실업급여 지급과 고용안정 지원, 직업능력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2017년 10조1368억원에 달했던 고용보험기금은 2018년 9조3531억원, 2019년 7조8301억원으로 줄었다.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여파로 4조원대로 축소될 전망이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1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화진 고용부 차관은 “올해는 어떤 방식으로든 재정 건전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재정 사정이 좋지 않아 기재부가 난색을 보이고 있어, 방법은 보험요율 인상으로 귀결될 수밖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고용보험료는 현재 실업급여의 경우 사업자와 근로자가 각각 급여의 0.8%씩 총 1.6%를 내고 있다. 기존에는 0.65%씩 1.3%였는데 2019년 10월 현재요율로 인상됐다. 올해 보험료가 올라가면 2년 만의 인상이 된다. 고용보험료율 인상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고용부는 올해 산재 사망자 수를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이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는 882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고용부 목표대로라면 올해 산재 사망자는 700명 수준으로 떨어진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전 연간 1000명 수준이던 산재사고 사망자를 500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로 잡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작아졌다.

세종=우상규 기자, 남혜정·정필재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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