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비용과 가격차별

최병일 2021. 2.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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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48] 일반적으로 '차별'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현상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인종차별, 학력차별, 지역차별 등이 그런 예이다. 이와 같이 '차별'이라는 단어의 선입관 때문에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가격차별' 개념 역시 원래 의미와는 달리 일반인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나 경제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 가운데는 '가격차별'을 기업이 특정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정상 가격보다 턱없이 비싸게 판매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불공정한 행위로 오인하기 쉽다. 이는 시장에서 공급자가 일부 고객을 소위 '호구'로 만드는 부당한 거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가격차별'의 개념은 앞서 살펴본 일반인의 인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시장 지배력이 있는 독점, 혹은 과점 사업자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량이나 가격을 조절할 수 있다. 다수의 공급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보다는 소수의 공급자만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생산량이 적고, 비교적 높은 가격이 책정된다. 시장 지배력이 큰 공급자가 있는 독점이나 과점시장에서 기업들은 굳이 박리다매로 많은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생산량과 가격을 책정한다. 예를 들어 카페가 하나밖에 없는 작은 마을을 가정해보자. 커피 한 잔을 생산하는 데 임차료 등을 포함해 경제학적 비용이 1000원가량 발생한다면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커피 가격은 거의 1000원으로 수렴한다. 그런데 경쟁자가 없는 카페 주인은 경제적 비용보다 높은 가격으로 커피를 판매할 가능성이 크다. 카페 주인이 커피 한 잔을 1100원에 판매할 때는 하루 100잔을 판매했는데, 1500원으로 커피 가격을 인상했더니 하루에 80잔이 팔렸다. 그렇다면 카페 주인은 당연히 커피를 하루에 80잔만 생산해 1500원에 판매할 것이다. 그러면 마을에는 커피 생산 원가 1000원보다는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지만 판매가격인 1500원보다 지불 의사가 낮아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카페 주인 입장에서도 1100원에 커피를 구매할 생각이 있는 주민들에게는 따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1100원으로 커피를 추가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카페 주인도 추가 이윤을 얻을 수 있고, 커피를 마실 수 없었던 주민들도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사진=매경DB
현실에서 이와 같은 가격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는 영화산업이다. 영화를 예매할 때 시간표와 가격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침 시간대와 저녁 프라임 시간대 영화 관람료가 서로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조 시간대 영화 관람료는 다른 시간대에 비해 30%가량 저렴하다. 같은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인데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통적인 경제 이론에 따르면 오전에 영화관을 찾는 고객들과 저녁 시간대에 영화를 보는 고객들은 영화 티켓 가격에 대한 가격 탄력성(가격이 소비자들의 구매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이 서로 다르다. 즉 오전에 영화를 보는 사람은 가격에 민감한 사람들이고, 프라임 시간대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가격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시간에 따라 가격탄력성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학생이나 노인층의 경우 대체로 시간적인 여유는 많지만 상품 구매력(예산)은 적어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영화를 보는 시간을 조정할 동기가 충분하다. 반면 대체로 주머니 사정이 여유 있는 직장인들의 경우 할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 스케줄에 맞는 시간에 영화관을 찾는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소비자들은 주어진 예산에 따라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도록 행동하므로 소득이 적은 사람이 가격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영화 관람과 같은 여가 산업에서 소비자들의 가격탄력성이 다른 원인을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수 있다. 기회비용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학에서 영화를 관람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산출할 때는 영화 티켓을 구매할 때 지불하는 금전적 지출 외에도 기회비용이 추가로 포함된다. 즉 은퇴한 장년이나 학생들의 경우 영화를 보는 동안 포기해야 할 반대급부가 적다. 반면 평일 낮 시간에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업무 시간에 영화를 보려면 영화 관람료뿐만 아니라 자신이 해당 시간에 벌 수 있는 수입을 포기해야한다. 즉 명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영화 관람료뿐만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영화 관람을 선택함으로써 시간 사용에 대한 대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비경제활동인구가 영화를 볼 때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은 관람료 1만원에 그치지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 관람료 외에도 영화를 보는 동안 일을 할 수 없어 포기하는 수입까지 비용으로 발생한다. 즉 영화를 보는 데 3시간이 필요하다면 시간당 2만원을 벌 수 있는 직장인은 영화 관람료 1만원 외에도 6만원의 기회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따라서 영화관이 상영 시간을 기준으로 실시하는 가격차별 정책은 고객들의 소득에 따른 구매력뿐만 아니라 기회비용까지 포함해 가격탄력성을 구분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여가와 관계가 깊은 여행 산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평일 혹은 비수기 숙박 가격과 휴가철 혹은 주말 이용 가격이 30~40%가량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나 휴가철 숙박 시설 가격이 높은 것은 수요 증가에 따른 균형 가격 상승도 주요한 요인이지만 앞서 살펴본 소득이나 기회비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격탄력성 차이 역시 주요한 요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생산자가 가격차별 정책을 시행하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격차별 전략은 생산자의 이윤만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매력이 낮아 거래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지만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아침 시간대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가격차별이 소비자에게도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만일 앞서 살펴본 카페 사장이 소득이 높은 주민들에게는 높은 커피 가격을 받지만 소득이 낮은 주민들에게는 원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판매한다면 소득이 적어 일부 고객들이 시장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소 이상적이지만 잘 설계된 가격차별 정책은 일정 부분 사회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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