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가보다 비싼 전세가.. 수도권 '갭투자 기획파산' 주의보

허지윤 기자 2021. 2. 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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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죠? 제가 전세 사기를 당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11월 인천 미추홀구 소재 신축 빌라를 전세 계약해 입주한 A씨는 최근 불안에 떨고 있다. A씨가 빌라 매매가격과 동일한 금액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는데 전세 계약 한달 뒤 집주인마저 바뀐 것이다.

작년 연말, 2년간 살던 전셋집 계약 종료를 앞두고 새 집을 구해 계약금을 걸어둔 30대 B씨는 졸지에 이사 가려했던 새 집 계약금마저 날리고 깡통전세 피해자가 됐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던 집주인의 말만 믿고 이사갈 새 집을 구해 계약금을 걸어뒀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고의로 집을 경매로 넘겨버린 것이다.

서울의 빌라촌 전경. /고운호 기자

수도권 주택 시장의 매매가격 상승세와 전세대란 속에서 이른바 ‘갭투자 기획 파산’ 위험이 잠재된 이상 거래가 끊이질 않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갭투자 기획파산’이란 전세보증금과 매매가격이 같거나 오히려 보증금이 더 높은 거래를 통해 주택을 대량 매입하고, 고의적으로 파산해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의 신종 사기수법이다.

4일 본지가 부동산 빅데이터∙AI 전문기업 빅밸류에 의뢰해 빅데이터 기술 기반 임대차 위험 탐지 플랫폼 이상거래탐지솔루션(FDS)을 통해 분석한 결과, 2018년 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최근 3년간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갭투자를 이용한 기획파산이 의심되는 이상 거래 사례가 총 8222건이 발견됐다.

이는 빌라 등 연립·다세대주택을 최소 30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임대사업자)가 매매가격에 준하거나 더 비싼 값에 전세 계약을 맺은 뒤 90일 이내 주택을 매매한 거래를 추려본 것이다. 최근 3년간 단 45명이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에서 이 같은 거래를 8222건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인천에서 이런 사례가 최근 들어 늘고 있다. 2018년 133건이던 기획파산 의심 사례는 2019년 888건으로 늘었고 2020년에는 10월까지만 918건이 발견됐다. 서울과 경기의 경우 2020년 들어 다소 줄어든 모양새인 것과 대조된다. 서울은 ▲2018년 938건, ▲2019년 2043건, ▲2020년(1~10월) 1224건이었고, 경기는 ▲2018년 226건, ▲2019년 1075건, ▲2020년(1~10월) 777건이 발견됐다.

서울과 경기에서 이상 거래가 소폭 줄어든 것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에서 283채의 빌라를 소유한 임대사업자와 공인중개사가 기소된 것이 알려진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갭투자 기획파산을 진행하는 소위 ‘꾼’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서울의 경우 아파트값 상승에 이어 빌라 매매가격마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이다 보니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고 한두 달 뒤 전셋값보다는 비싼 매매가격으로 계약이 이뤄져 정상 거래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서울 자치구별로는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강서구에서 의심 사례가 1194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 ▲구로구(445건), ▲금천구(374건), ▲양천구(348건), ▲은평구(230건) 순으로 나타났다. 경기 지역은 ▲부천(963건), ▲안양(189건), ▲고양(138건), ▲파주(107건), ▲군포(70건)의 순으로 많았다. 인천은 부평구가 (634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남동구(453건), ▲서구(347건), ▲미추홀구(294건), ▲계양구(180건) 순으로 조사됐다.

이상 거래는 주택을 대거 소유한 임대사업자 A씨와 중개업자 B씨가 사전에 모의해 이뤄지는 구조다. 임대사업자와 중개업자는 빌라 매매를 원하는 주택 소유주나 건축주에게 시세대로 주택을 팔아주겠다며 접근한다. 연립다세대주택 특성상 매매가 잘 안되는 측면이 있다 보니 집주인이 불법행위에 가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개업자는 시세 1억5000만원짜리 주택을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에게 보증금 1억6500만원에 소개해,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맺게 한다. 이후 이 집을 임대사업자가 사들인다. 집주인은 골칫거리였던 집을 처분하게 된 것이고, 임대사업자는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을 사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세입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1500만원이란 차익을 중개업자와 나눠 갖는다. 이런 방식으로 최소 30채 이상의 거래를 일으켜 이익을 불리는 방식이다.

피해 사실을 세입자는 전세 계약 종료·전세금 반환 시점에야 알게 된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바뀐 집주인은 전세금을 줄 수 없다며 파산 신청을 해버린다. 집이 경공매로 넘어가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본다. 통상 연립·다세대주택의 경우 경공매에서 시세 이상의 값에 낙찰되기가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세입자가 경·공매 후에도 보증금 전액을 되찾기가 어렵다. 경매에서 시세의 80% 가격에 낙찰될 경우 시세의 110%에 달하는 전셋값을 다 보전받지 못하는 것이다. 주택 소유자의 범죄 행위 가담도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별도 이면계약이나 리베이트 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다면 집주인의 불법행위는 입증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뒤처리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같은 보증기관이 하게 된다. 피해가 늘어나면서 HUG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액은 6468억원으로, 전년보다 400억원 가량 늘었다. 이는 곧 국가적 채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지적이다.

설령 세입자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정상적으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다. 세입자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하고 형사처벌을 기다리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소병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은 "작년 HUG와 SGI서울보증이 운영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자는 20만명에 육박한다"면서 "국토교통부가 근본 대책을 마련하고, 고의적·상습적으로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의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경 빅밸류 대표는 "최근 고도화된 수법으로 전세보증금을 노리는 세력들이 늘고 있어 감시가 절실하다"면서 "세입자들의 실질적인 피해 예방을 위해 전세보증보험을 맡고 있는 HUG나 전세대출을 시행하는 금융기관, 시장을 감독하는 국토교통부와 지자체 등에 이상 거래 탐지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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