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자 세계 1위된 중국 면세점.. 한국 면세점 다이궁 뺏길라

김은영 기자 2021. 2. 4.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韓 면세점 코로나로 손발 묶인 사이
中 하이난 앞세워 면세시장 장악
면세점 "코로나 끝나도 다이궁 안 올라…규제 완화해야"
전문가 "관광 연계해 면세업 재설계 해야"

"한국 면세 사업 절반은 중국 것이다."

2019년 3월 찰스 첸 중국 국영면세품그룹(CDFG) 회장은 세계면세협회(TFWA)가 주관한 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면세시장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다.

그로부터 1년 뒤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4일 영국 면세유통 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에 따르면 CDFG는 작년 상반기 매출 28억5500만달러(약 3조1862억원)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세계 면세점 순위 1위에 올랐다. 전년 4위에서 3계단 상승했다.

중국 국영면세품그룹(CDFG)이 운영하는 면세점./CDFG

반면 세계 2,3위를 차지했던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작년 상반기 각각 3,5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1위였던 스위스 면세 업체 듀프리는 2위로 밀려났다.

중국이 세계 면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하이난(海南)성의 면세업이 성장한 영향이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면세 특구로 지정하고, 내국인의 연간 면세 한도를 기존 3만위안(약 517만원)에서 10만위안(약 1724만원)으로 올리는 등 규제를 풀어줬다. 자국민의 해외 소비 증가로 인한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때 마침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여행 등이 제한되자, 중국인들은 하이난에서 억눌렸던 소비 욕구를 발산했다. 지난해 하이난성의 면세점 매출은 320억위안(약 5조5257억원)으로 전년 대비 140% 이상 늘었다. 대부분 중국인이 돈을 썼다.

중국이 승승장구 한 사이 한국의 면세시장은 쪼그라들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15조5051억원으로 전년(24조8000억원) 대비 38% 감소했다. 면세점 방문객은 166만9000명으로 전년도의 22%에 그쳤다.

하이난성의 세계 최대 시내면세점 싼야국제면세성./연합뉴스

면세점들은 코로나 여파로 한국을 찾지 못한 중국 보따리상(다이궁·代工)들이 중국 하이난성으로 이동한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국내 면세시장에서 다이궁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지난해 정부가 재고 면세품의 내수 판매와 제3자 국외반송을 허용하고, 면세점들도 자체적으로 유치 전략을 펼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 코로나로 한국 떠난 다이궁, 하이난으로 갔다

2011년 중국 정부가 하이난성을 면세 특구로 지정했을 때만 해도 국내 면세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국내 면세점의 품질과 신뢰도가 월등히 높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 하이난이 내국인 면세한도를 1만위안(약 172만원)에서 3만위안으로 올렸던 2019년, 국내 면세점 매출은 30% 넘게 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중국 정부가 면세 시장을 본격 키우자 상황이 달라졌다. 4개였던 하이난 면세점은 지난해 12월 4개, 올해 2월까지 2개가 추가돼 총 10개로 늘었다. 중국 정부는 내년까지 지금의 2배 이상 면세점을 확대할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자 세계 1위 면세점이었던 듀프리는 중국 국영기업 하이난개발홀딩스(이하 HDH)가 이달 하이난에 개장하는 모바몰 면세점에 상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현지 영업에 뛰어들었다. 아모레퍼시픽 등 면세 판매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도 현지 면세점과 파트너십을 맺고 대응에 나섰다.

신라면세점 화장품 매장, 코로나19로 인적이 끊긴 모습이다./ 조선DB

면세점들은 정부의 지원책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이 내국인 규제 풀어 면세 시장을 키웠듯, 한국도 내국인 구매 한도를 완화하고 역직구 방식을 도입하는 등 정책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코로나로 실적이 줄어든 명품들도 중국 판로를 넓히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매입 협상력이 떨어져 고객을 중국에 모두 뺏길 것"이라고 했다.

면세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면세시장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태 이후 중국 관광객이 줄어든 후 다이궁에 의존해 성장했다. 기업형 재판매상인 다이궁이 구매량을 늘리자, 정부는 신규 면세점 특허를 남발하며 성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기업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출혈 경쟁이 커졌고, 어렵게 면세 특허권을 얻은 한화와 두산도 수천억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사업을 포기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면세업은 한 국가의 관광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으로, 관광·문화·의료 등과 연계해 성장해야 한다. 중국도 하이난 관광지와 연결해 면세 산업을 키우고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전략이 부족했다. 과거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면세점의 미래를 재설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