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으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정의로운 전환' 할 수 있나 [흑백 민주주의 ⑥]

윤승민 기자 2021. 2.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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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잠시, ‘방역’이 있겠습니다…‘공정’은 잠깐 넣어두세요

2020년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자영업자들의 수입이 줄고 문을 닫는 가게들 또한 늘어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확진자의 개인정보와 동선을 공개한 데 이어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전염병 확산이 생태·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생겼고, 정부와 기업들의 기후위기 대응도 구체화됐다. 산업구조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변화는 논란을 낳았다. 방역 때문에 입는 피해가 대기업보다 소상공인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수도권 소상공인들은 지난 2일 방역당국이 내건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영업제한 시간인 오후 9시 이후에도 영업을 이어가는 ‘오픈 시위’에 나섰다. 더 급진적인 탄소중립을 주장하는 환경운동단체와 탄소배출 산업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운동단체가 기자회견장에서 충돌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는 방역을 우선순위에 두면서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 양극단의 목소리,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만이 과도하게 논의되는 ‘흑백 민주주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은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다며 주민들을 내쫓고, 경영상의 긴급한 필요 때문에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는 등 한국 사회 어딜 가나 ‘위기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전례 없던 위기에서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방역이 진행됐다”며 “장기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방역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탄소중립 시대에서 환경·노동운동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논의의 장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한국 사회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앞두고 있다. 경향신문은 한국 사회가 사회갈등이 증폭되는 ‘흑백 민주주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던져보기로 했다.
화력발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산업구조·일자리 변화 불가피
‘기후위기 대응’ 공감 커졌지만
노동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어
‘녹색 일자리’ 구체적 대안 필요

지난해 9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 건설을 주력으로 하다가 해상풍력 등 ‘그린뉴딜’로 사업 분야를 옮기고 있는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을 격려차 방문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날 두산중공업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탈석탄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이 이를 제지했다. 노조는 “탈석탄·탈원전 때문에 조합원들이 명예퇴직하고 가족들은 힘들어하고 있다”며 “탈원전 정책 속도를 조절하고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을 재개하라”고 주장했다.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코로나19 등 기후위기 위험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강조하고 개별 시민들의 각성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발전이 보편화되는 동시에 화력발전 규모를 줄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산업구조와 일자리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으로서의 지위와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

2050년까지 대기상의 탄소 증가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과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0일 ‘2050년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 선언의 3대 목표 중 하나로 ‘소외 계층·지역이 없는 공정한 전환’을 제시했다. ‘공정한 전환’은 친환경적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실업과 지역경제 쇠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정의로운 전환’과 유사한 개념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친환경적 산업구조 변환의 해결책으로 주목받았다. 1960년대 미국에서 제조업 노동자의 유독물질 노출 사례가 빈발하자,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문제 해결 실마리를 함께 찾는 동맹관계를 맺은 것이 ‘정의로운 전환’ 개념의 출발점이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은 탄소중립 속도를 높이려는 환경운동과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운동이 충돌한 사례다. 반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일자리 확보·교육훈련 등 ‘정의로운 전환’ 대책은 환경·노동운동이 협력해 기업과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국제노총도 ‘정의로운 전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 전문에 상징적으로나마 ‘정의로운 전환’이 명시된 것은 국제노총이 수년간 이를 주장해온 결과다. 민주노총도 지난해 기후위기 대응 네트워크를 꾸렸다. 산업별 정책 담당자와 기후활동가들이 수차례 회의를 했고, 내부에 기후위기 특위를 만드는 방안도 논의했다.

그러나 특위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김석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지난해 민주노총이 위원장 사퇴 이후 비대위 체제로 운영하느라 특위를 꾸리기 어려웠다”며 “지난해 말 선출된 새 집행부는 아직 사업계획을 구체화하지는 못했지만, 2월 초 대의원대회 때 기후위기 대응 특별결의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에 참여했던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노조 지도부도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다”고 말했다.

집행부 입장에서는 조합원의 급여, 복지 등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 등 장기적 과제보다 지지를 얻기가 쉽다. 집행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천명하면 일자리 감축에 노조가 동의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녹색일자리’ 가능할까

노동운동의 기후위기 대응은 불가능한 것일까. 독일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지난해 7월 독일 연방의회는 2038년까지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한다는 ‘탈석탄법’을 통과시켰다. 탈석탄위원회에는 환경단체와 노조, 에너지기업과 주요 정당까지 함께 참여했다.

독일은 1999년 노조가 환경단체 및 정부·산업계와 제휴 협력해 ‘노동과 환경 동맹’을 결성했다. 이들은 2001~2006년 건물에서 발생하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2% 줄이면서도 일자리 2만5000개를 추가로 만들었다.

석탄발전 비중이 높았던 독일에서 이런 협력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녹색일자리’였다. 녹색일자리가 늘어나고 취업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노조도 자연스레 친환경 행보에 동참한 것이다. 김현우 위원은 “독일 금속노조가 탈핵운동에 더욱 동조하게 된 것은, 전통적인 전력 부문보다 재생에너지 부문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세도 가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7월 내놓은 그린뉴딜 계획에는 65만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만 있을 뿐 구체적 계획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노동계가 탄소중립에 호응할 수 있는 세밀한 일자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현재 화석연료 발전 산업 일자리는 고임금에 안정적이지만 재생에너지 산업 일자리는 그렇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며 “재생에너지 일자리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정부가 화력발전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퇴출을 천명하고 일자리 전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위원은 “정부가 그린뉴딜 일자리 정책을 구체화하고, 일자리 대책에 노동자들을 참여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환경운동 진영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정부·기업의 구조조정 요구에 맞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현우 위원은 “5~10년 후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없어질 수 있는 일자리들이 본사 및 협력업체 단위까지 얼마나 있는지 노동계가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석 국장은 “고탄소 배출 산업별 노조에서는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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