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팬데믹에도 목욕탕을 못 닫는 이유/최나욱 건축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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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는 기능을 지칭할 때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현대의 건축물은 더이상 단일한 기능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건축의 다양하고 계속 변화하는 기능을 상징한다.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건축의 기능을 기준으로 사회 활동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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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는 기능을 지칭할 때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현대의 건축물은 더이상 단일한 기능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기능의 목록을 뜻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해진 까닭이다. 요컨대 공공복리가 발전하면서 도서관은 책만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게 됐고, 공중위생에 대한 인식이 생기며 병원은 사후적인 치료만 담당하는 장소가 아니게 됐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따지고 보면 꽤나 복잡한 말인 셈이다. 프로그램은 건축의 다양하고 계속 변화하는 기능을 상징한다.
최근에는 프로그램의 문제가 대중적으로도 부각되고 있다.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건축의 기능을 기준으로 사회 활동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다양한 건축 공간을 감염의 위험도와 사회적 필요도에 따라 분류하고 이용을 막는다. 그리고 아무래도 건축 기능을 정의하는 게 입장마다 다르니, 기준을 발표할 때마다 많은 모순과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당연히 닫아야 하는 곳’ 혹은 ‘닫아서는 안 되는 곳’ 등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곳들과 달리, 유난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들이 있다. 목욕탕과 운동 시설이 대표적이다. 목욕탕은 어느 시설보다 위험도가 높아 보이는데도 영업을 제한하지 않는다며, 운동시설은 태권도장은 여는데 헬스장은 못 연다며 논란이 빚어진다. 기능을 구분하는 기준이 선뜻 이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건축 기능을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보편적인 정답이 아닌 단일한 해석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에게는 목욕탕이 여가 시설일 수 있지만,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원금을 이용해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필수 시설이라고 한다. 전용 수세식 화장실과 목욕시설이 미비한 집에 사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수가 60만이 넘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목욕탕의 프로그램을 생각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태권도장은 운동만 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학부모들이 임의로 보내는 보육 시설이라고 한다. 이때 태권도장은 운동시설에 국한하지 않는 기능을 지닌다. 물론 이 역시 임의적인 구분이겠으나, 프로그램이 갖는 복합성과 다양성이 여기 있다.
이처럼 건축 기능을 정의하는 관점을 달리해 보면, 얼핏 비슷해 보이는 공간들이 어느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다르게 사용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사용하는 입장만 고려해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기능들이 건축 공간마다 배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잠깐 불편한 정도에 그치는 기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박하고 필사적인 일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건축가가 프로그램을 사회 상황과 결부해 해석하듯, 사람들은 건축 프로그램에 기반해 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건축에서 프로그램은 계속해 변화하는 사회 활동과, 지어지면 그 모습 그대로 있어야 하는 건축물 간의 간극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었다. 나아가 팬데믹 속에서 건축 기능을 해석하는 모습은 또 다른 간극을 설명하는 것 같다. 당연하게 어느 기능을 말하고 있을 때 그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는 너무 다른 사회와 사람들의 입장을 말이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단언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다른 어딘가에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보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건축 프로그램이 얼마나 안일하고 단출했는지를 뉘우치게 된다.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인식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사실은 비단 건축 분야에 국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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