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열쇠' 앞에서 흔들리는 이낙연-홍남기의 인연
신뢰 깊었던 두 사람, 4차 재난지원금 놓고 정면충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찰떡 호흡’을 맞췄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난지원금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다. 총리실에서 함께 일했던 두 사람의 거리가 서울 여의도와 세종시만큼 멀어졌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3일 “민생 고통 앞에 정부 여당이 더 겸허해지길 바란다. 재정 주인은 결국 국민이다”고 ‘재정 곳간지기’를 자임한 홍남기 부총리를 직접 겨냥했다. 전날 이 대표가 ‘4차 재난지원금에 보편과 선별을 병행하겠다’고 연설한 뒤 4시간 만에 홍남기 부총리가 “전 국민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을 한꺼번에 모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한 데 따른 공박이었다. 이날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에서 나온 홍 부총리 사퇴요구 발언을 이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낙연 대표의 의중 없이는 불가능한 ‘공개 경고’였다.
지금은 냉기류가 흐르지만, 한때 이 대표와 홍 부총리는 매우 돈독한 관계였다. 첫 인연은 2017년 5월이었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 첫 국무총리에 취임했고, 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는 홍남기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이 등용됐다. 홍남기 실장은 박근혜 정부 때도 중용됐던 관료여서 문재인 정부 국무조정실장에 발탁되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 부총리는 국조실장 시절 당시 이낙연 총리에게 질책당하지 않는 관료로 소문이 났었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깐깐한 업무 처리로 유명했다. 총리실에서 일했던 한 고위 관료는 “공무원들이 이 총리한테 보고하러 가면 책 잡힐 게 두려워 와들와들 떨곤 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이 총리-홍 실장과 함께 일했던 전직 고위 공무원은 “정부 초기라 정책을 셋업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두 분 사이는 좋으셨고, 갈등도 없었다”고 했다. 이 총리는 무엇을 물어도 막힘 없이 대답하는 홍 실장의 꼼꼼한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 대표와 홍 부총리 사이의 황금기는 지난 2018년 11월 홍 실장이 경제정책을 관할하는 부총리로 발탁된 시기로 보인다. 홍 부총리는 기재부 내에서 예산실장과 기재부 차관 등 주요 보직을 거치지 않은 이른바 ‘비주류’였다. 그가 차기 부총리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전·현직 경제 관료들은 의아하다는 분위기였다. 이낙연 총리의 신임을 얻어 적극적인 추천을 받았다는 설이 돌았다. 홍 실장은 부총리로 승진한 뒤에도 이낙연 총리와 관계가 매끄러웠다.
그러나 이낙연 총리가 여의도로 자리를 옮기면서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확산하고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홍 부총리에게 적극 재정을 주문하는 정치권의 요구가 빗발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논쟁이었다. ‘기본소득주의자’인 이 지사는 끊임없이 기재부가 ‘소극적인 재정’을 펼친다고 공격했고, ‘나라 곳간지기’를 자임하는 홍 부총리는 “기재부와 저의 업무에 대해 일부 폄훼하는 지나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대표도 사회복지 등에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선 재난지원금 논쟁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서 공격받는 홍 부총리를 감싸며 “기획재정부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와의 관계도 변했다. 지난달 24일 홍 부총리는 재원 마련에 난색을 표하던 자영업자 영업손실법 등을 논하는 고위 당정협의회가 열리자 불참한 바 있다. 평소엔 회의를 빠지지 않던 홍 부총리는 감기몸살을 이유로 들었다. “기본적으로 튀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현재의 시점과 본인의 위치(기재부 장관)가 결부된 것”(전직 고위 공무원)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국조실장 때부터 홍 부총리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공무원이 업무 장악력이 높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부총리를 오래 하게되면 자기 소신이 계속 강해져서 단점으로 바뀔 수도 있다”며 “공무원이 곳간지기를 자임하면서 무조건 (재정을 더 쓰는 것을) 안된다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으로 돌아온 이낙연 대표와 홍 부총리 간의 ‘관계 균열’ 밑에는 ‘재정권력’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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